2010년 12월 20일 월요일

좋은날

어쩜 이렇게 하늘은 더 파란 건지
오늘따라 왜 바람은 또 완벽한지
그냥 모르는 척 하나 못들은 척
지워버린 척 딴 얘길 시작할까
아무 말 못하게 입맞출까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흐르지 못하게 또 살짝 웃어
내게 왜 이러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오늘 했던 모든 말 저 하늘 위로
한번도 못했던 말
울면서 할 줄은 나 몰랐던 말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 어떡해
새로 바뀐 내 머리가 별로였는지
입고 나왔던 옷이 실수였던 건지
아직 모르는 척 기억 안 나는 척
아무 일없던 것처럼 굴어볼까
그냥 나가자고 얘기할까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흐르지 못하게 또 살짝 웃어
내게 왜 이러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오늘 했던 모든 말 저 하늘 위로
한번도 못했던 말
울면서 할 줄은 나 몰랐던 말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
어떡해
이런 나를 보고
그런 슬픈 말은 하지 말아요
철없는 건지 조금 둔한 건지
믿을 수가 없는걸요
눈물은 나오는데 활짝 웃어
네 앞을 막고서 막 크게 웃어
내가 왜 이러는지 부끄럼도 없는지
자존심은 곱게 접어 하늘위로
한 번도 못했던 말
어쩌면 다신 못할 바로 그 말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
아이쿠 하나 둘
I'm in my dream
It's too beautiful beautiful day
Make it a good day
Just don't make me cry
이렇게 좋은 날
  

Christmas time

혹시 기억하니 우리 처음 본 날
그때처럼 하얀 눈이 내려
너에게 가는 길 내 맘과 같은지
거리마다 행복한 얼굴
너에게 줄 선물상자 속
내 맘 담아 고백해볼까  
설레는 나 너도 나와 같은 맘 일까
기다려온 Christmas 오늘 더 그대를 사랑해
난 너에게 고백하기 위해
난 이날만을 기다려왔어
온 세상이 온통 하얀 눈으로 물들어가
너에게 난 지금 이순간 고백할께
너만 사랑한다고
웃음 띤 얼굴로 내 품에 안긴 너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데
차가운 내 두 손 꼭 잡아주던 넌
좋은 사람 Merry Christmas
이순간이 영원하길 난 기도할께
매일 널 향한
이런 내 맘 말하지 않아도 알잖아
기다려온 Christmas 오늘 더 그대를 사랑해
난 너에게 고백하기 위해 난
이날만을 기다려왔어
온 세상이 온통 하얀 눈으로
물들어가 너에게 난 지금 이순간 고백할께
너만 사랑한다고
눈이 내리면 웃던 너의 미소
조금 더 따뜻해져라 꼭 잡은 두 손
네 손 위의 나의 손 이 순간이
계속 끝없이 계속되면 좋겠어
Everytime I look into you eyes, I realize
How good it feel yeah, with ya in my life
Ya know you’re so amazin’ just keep the fire blazin’
You’re the only one I need and no one else around me
사랑하는 그대여 이제
(Merry Christmas)
온 세상이 Happy Christmas time
오늘을 기억해
새하얀 사랑을 가득 담아 너에게 모두다 줄꺼야
거리마다 종소리가 들려와 너의 두 눈 바라보며
두 손 꼭 잡고 고백할래
This is our Christmas time
  

2010년 11월 28일 일요일

이승우_사랑의 전설 02

163
만남에 계기가 있는 것처럼 헤어짐에도 계기가 있게 마련이다. 물론 그 계기는 엄청난 것일 수도 있고 어이없는 것일 수도 있다. 엄청난 것이든 어이없는 것이든 숙명적이라는 점에서 그 무게는 같다. 하지만 우연히 만나는 것처럼 우연히 헤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우연이라니. 사랑은 모든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다. 어이없는 것일 수는 있지만, 우연일 수는 없다.

165
이 세상에는 뜨하지 않은 일들이 항상 일어난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예외적인 인들이 이 세상의 모양과 방향을 결정하는 진짜 요인인지 모른다. 뜻 안의 일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방패를 마련할 수 있다. 창의 크기와 예리함에 걸맞는 방패들. 그렇기 때문에 창이 아무리 크고 날카로워서 바애를 뚫는다고 하더라도 그 충격은 상대적으로 그렇게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뜻 밖의 일들에 대해서는 그에 걸맞는 방패를 준비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뜻밖의 공격인 경우에는, 아무리 창이 작고 둔하다고 할지라도 그 충격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 된다. 때때로 치명적일 수 있다.
 우리가 받는 충격의 강도는 창의 크기나 예리함의 정도, 즉 사태의 경중에 있지 않고, 방패의 준비 여부, 즉 의외성의 유무에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또는 어떤 사람으로부터는 아무리 심한 욕설을 듣고 협박을 받아도 끄덕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그 사람이 다른 상황, 다른 사람으로 부터 아주 가벼운 비난만 받고도 회복 불능의 충격을 받는 경우를 본다. 이 불가사의한 문제의 해답은 의외성에 있다.


179
열정 속에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열정이 그대 속에 있는 것은 좋지 않다.
윌리엄 브레이크 <순수의 전조>

182
그의 목소리는 무겁고 침울했다. 사람들은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에 묻어 있는 색깔을 통해 말하는 사람의 의중을 더 잘 파악한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의 예의바른 말의 내용에 속았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의 말에 묻어 있는 색깔을 너무 쉽게 읽었다.

185
규진은 미숙함에 대해 생각한다. 그때 나는 미숙했어, 하고 자신에게 말한다. 마치 미숙함이 사랑을 실패하게 만든 원인인 것처럼. 그러면 이제 그는 성숙한 것일까? 아니 사랑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숙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대체 어느 만큼의 성숙이 필요한 것일까?
  혹시 성숙이라는 말은 열정의 배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어느 정도는 그런 것 같다. 만일 그런 뜻이라면, 그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랑을 감정의 산물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물론 단순하고 위험하다.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긴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이 감정놀음일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랑이 감정일  뿐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불안하겠는지 우리들의 감정에게 물어볼 일이다. 사랑의 일관성과 영원성 같은 건 아예 기대하지도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신과 시체를 빼놓고는 감정을 일관성 있게 유지할 수 있는 존재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불 안 가리는, 펄펄 끓는 사랑이 겉으로 보기엔 멋있어 보이고 진짜 같아보이고 위대해 보인다. 거기에 모종의 진실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불처럼 뜨겁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불은 생명력이고 거대한 에너지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분별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사랑의 안쪽에 달라붙어 사랑과 한 몸을 이루면서 사랑을 상하게 하는 질투라는 악마의 속성이 불이다.
 그러니까 무슨 말인가? 미숙한 사랑이란 무엇이고 성숙한 사랑이란 무엇을 이루는 말인가? 규진의 설명은 이렇다. 열정밖에 없는 사랑은 위험하다. 열정은 상대방을 '향해서' 솟구치지 상대방을 '위해서' 솟구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문제이다. 새는 하나의 날개만으로는 날 수가 없다. 감정 또는 열정이라는 하나의 날개밖에 없는 사랑, 그것을 그는 미숙한 사랑이라고 부른다. 성숙한 사랑이란 열정이라는 날개 말고 다른쪽에 분별력이라는 날개를 달고있는 사랑을 칭한다.
 사랑을 분별력과 상관없는 것으로, 심지어는 분별력과 거리가 멀수록 위대한 사랑인 것처럼 치부하는 것은, 서른여섯 살의 소설가인 서규진의 견해에 의하면, 미숙한 세대의 사랑론이다. 사랑을 하면 맹목적이고 눈이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이 뜨인다. 아니, 그래야 한다. 애인을 눈멀게 하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애인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진정한 사랑은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해서 사랑하기 전보다 더 세상을 잘 보게 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성 안에 가두는 콜렉터의 사랑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불의 사랑이고, 열정만 있고 분별력은 없는 사랑이다. 즉 미숙한 사랑이다. 규진은 종종 자신의 사랑이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후회하곤 한다.
 사랑은 좋은 것이다. 사랑이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그런데 사랑이 좋은 것은 그것이 모든 가치를 무너뜨리고 의미 없게 만들고 파괴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에 고착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것은 흉측한 악마의 장난이다. 사랑은, 사랑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파괴하고 버리게 하는 부정적인 힘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을 부추기고 추켜세우는 적극적인 에너지여야 한다.
 오랫동안 사랑하는 사람은, 예컨대 좋은 부부는 열정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열정만으로 얼마나 버틸 것인가? 열정이 사라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새로운 열정의 대상을 찾아 나설 것인가?), 감정만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감정만으로 사랑의 일관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분별력만으로 사는 것도 아니다(열정 없는 분별력을 누가 사랑이라고 부르겠는가?).
 분별력이 없는 사랑은 맹목이고, 열정없는 사랑은 공허하다. 성숙한 사랑은 두 개의 날개로 난다.

230
창 밖에는 눈이 오고/ 시인은 시를 읽는다/ 창 밖에는 왜 눈이 오고/  시인은 왜 시를 읽을까?/ 그녀는 여기 있고/ 나는 그녀 곁에 있다/ 그녀가 여기 없고/ 내가 그녀 곁에 없어도/ 창 밖에는 눈이 오고/ 시인은 시를 읽을까?/ 그녀는 너무 부드럽고 큰 눈/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시/ 아, 나는 붙잡혔구나/ 사랑이 나를 붙들었구나/ 창 밖에는 눈이 오고/ 시인은 시를 읽고/ 그녀는 내 가슴에 있네.


237
나는 난파한 작은 배의 파편들이 바다에 떠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다. 그중 몇 개의 파편은 서로 만나 잠시 함께 붙어 있었다. 얼마 안 있어 폭풍이 몰아쳐서 그 두 파편의 하나는 서쪽, 다른 하나는 동쪽으로 몰고 가버렸다. 이 두 파편은 이 세상에서 절대로 다시 만나는 일이 없게 되었다. 인간의 운명도 그러한 것이다. 단지 거대한 난파를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는 것 뿐이다.
막스 뮐러 <독일인의 사랑>

253
좋은 것을 사랑하는 것은, 좋은 것을 소유하고, 그것을 영원히 소유하려고 하는 욕망과 동일한 것이다. 사랑은, 그러므로 항상 불멸성에 대한 욕망이다. 그러나 이 욕망에서도 역시, 자기 중심적인 의도는 명백하다.
엔더스 니그렌 <아가페와 에로스>

이승우_사랑의 전설 01

11
이어서 그는 '연애소설은 무엇으로 쓰는가?' 하고 묻는다. 물론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는 지문으 한 사람이 대답도 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질문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질문자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체험으로 쓴다'가 정답이라고 말한다.

15
내가 가르쳐 줄까? 그때 가슴이 콩당콩당했던 것은 몰래 읽는 걸 들킬까봐 그랬던 것이고, 요즘 그런 기분이 안 드는 것은 네가 그런 스릴을 가지고 연애소설을 읽지 않게 때문이야.

18
'태풍은 비와 함께 오는 거야. 태풍이 비를 끌어안고 있다고.' '태풍이 비를 만들지는 않아, 그건 다른 거라고. 비는 태풍에 섞여 있을 뿐이야.'

40
전화기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했다. 그런데도 아직 전화기가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은 그가 그 생각을 전화벨이 울릴 때만 하기 때문이었다.

47
독신자들 중에 진지한 철학 때문에 혼자 살거나 혼자 살려고하는 사람의 비중은 그렇게 높지 않다. 그ㅓㅅ은 마치 결혼하는 사람들 가운데 확고한 무슨 결혼 철학 같은 것 때문에 결호능ㄹ 하고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살다보니 이렇더라 저렇더라 의견이 생기게 되고, 그게 철학이 된다. 철학이 삶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삶이 철학을 만들어낸다. 또는 삶에서 철하은 만들어내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55
흔히들 한눈에 반하는 사랑에 대해 말한다. 마치 그런 사랑이 사랑의 본질이고 진수인 양 추켜세우기도 한다. 소나기에만 옷이 젖는다는 생각이 옳지 않은 것처럼 그 생각 역시 옳지 않다. 소나기만 비일까? 이슬비도 맞으며 걸으면 어느 사이엔가 옷이 흠뻑 젖는다. 요컨대 그런 사랑도 있는 것이다.

60
그는 눈으로 자기 이름을 찾았다. 우편물을 받았으므로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이 뻔한데도 눈은 습관적으로 '서규진'을 찾았다. 이름은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자기 얼굴만큼이나 익숙하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살짝 스치는 눈길에도 어김없이 가장 먼저 붙잡히게 마련이었다.

63
노래는 영혼과 가장 친하다. 노래는 영혼 속으로 흘러 들어가서 그 영혼의 형식인 기억을 이끌어낸다. 어떤 사람이 어떤 노래에 사로잡힌다면 그것은 그 노래가 그의 영혼에 어떤 자국인가를 남겼기 때문이거나 그의 영혼에 나 있는 어떤 자국인가를 노래가 들추기 때문이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며, 혹은 들으며 운다. 그 노래가 그 사람을 울리는 것일까? 물론 그렇다. 그러나 그 노래의 무엇이? 노래가 무언가를 상기시키지 않는 다면 노래가 영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무엇인가를 불러내지 않는다면, 어떻게 울 수 있을까? 사연 없는 감동이란 아마도 없을 것이다.

70
사람을 감격시키는 것은 선물의 내용이 아니라 그 선물이 전해지는 형식에 있다. 이른바 의외성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아무리 크고 값나가는 선물이라고 하더라도 받을 사람이 예측하고 있거나 당연히 기대하고 있을 경우에는 별 감동을 주지 않는다. 그런 경우에도 크게 감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선물을 건넨 상대방을 위해 그런 척하고 있다고 보아도 틀림없을 것이다. 그날 그녀를 사로잡은 행복의 출처는 바로 그 선물의 의외성에 있었다.

74
침묵은 단순히 말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침묵 역시 하나의 의사 표현이다. 때때로 침묵은 말보다 더 크게 말한다. 예컨대 말을 통해서는 잘 드러낼 수 없는 어떤 미묘한 감정 같은 것이 있다. 그런 미묘한 감정을 보다 효과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은 표정이다. 표정은 침묵의 말이다. 여러가지의 표정이 있다. 얼굴의 표정이 있고, 발의 표정이 있고, 손의 표정이 있다. 입을 다물면 몸이 말을 한다. 몸이 가장 솔직하게 가장 정확하게 말을 한다.

81
도시 생활은 까닭 없이 번잡하다. 쉴 새 없이 전화벨이 울리고, 여기저기서 차가 막힌다. 이런저런 사람들과 크고 작은 일들이 하루의 시간을 잘게잘게 토막내 버린다. 쪼가리 시간들에 매달려 호흡이 긴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84
만일 그것이 향수에 다름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향수가 어떻게 사랑일까? 옛날 애인은 완전하다. 그런데 이 세상에 허물없이 완전한 사람이 있을까? 그가, 또는 그녀가 완전하다는 것은 그러니까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그가, 또는 그녀가 허상이기 때문에 완전할 수 있는 것이다. 허상을 향해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을 사랑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까?

스탕달은 '연애론'에서 결정작용이라는 말을 이제 막 사랑에 누뜨기 시작하는 연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환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결정작용이 철저하고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를 그는 간과했다. 시작되는 사랑이 아니라 기억 속으로 들어가 버린 사랑. 기억은 저 보잘것 없는 나뭇가지를 찬란하게 만드는 잘츠부르크의 염갱과 같은 것이다. 기억이라는 염갱 속에서 옛날 애인은 완전해지고,  그리하여 사랑의 이데아가 되는 것이다.

91
우리가
서로 그리워하면
그리워할수록
우리는 더욱 사람으로 빛나리라

우리가 서로 그리워하면
그리워할수록
우리는 짐승들 속에서도 더욱 사람으로 빛나리라

나부끼는 갈대밭 너머 님이여

김준태 <그리움. 밭 시 35>

97
움직임과 음성을 좇았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미세한 차이가 포착되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숨을 쉬지만, 마침내 그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의 기분은 단순하지가 않았다. 안도감인가 하면 섭섭함도 배어 있었다. 아무래도 섭섭함 쪽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는 것은, 혹시 길거리에서 그녀와 마주친다면 어떻게 할까하는 상상으로 서점을 나서는 그의 머릿속이 온통 어지럽혀져 잇었기 때문이다.
......
 그녀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겠다는 계획같은 것은 없었다. 아니, 그런 계획 같은건 세워지지 않았다. 우연히 그녀를 만난다면 어떻게 할까? 그는 늘 그 생각을 했다. 그것이 시작이고 또 끝이었다. 더이상은 생각이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것은 그 스스로 그처럼 기적 같은, 우연한 조우에 희망을 걸고 있지 않다는 뜻일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말이 사실일 것이다. 희망이 없기 때문에 희망한다는 것. 희망이 있다면, 있다고 느낀다면, 그는 희망하는 대신 준비해야 할 것이다. 준비는 구체적인, 이를테면 일이고 작업이다. 그러나 희망은 추상적이고, 따라서 어느 정도는 모호해도 상관없다. 그런데 그는 준비하지 않고 희망한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믿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놓고 상상하고 희망하고 바란다는 마음의 오묘한 움직임.
 아니면 그는 그녀와의 해후를 두려워하고 있을까? 그에게는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염원이 있다. 그 염원이 일상생활 속에서 그녀의 흔적을 발견하게 한다. 그것들은 때로 그를 긴장하게 하고 때로 숨을 멈추게 한다. 그런데 두려워한다고? 그에게 그렇게 큰 염원이 있다면, 염원이 어떻게 두려움과 짝이 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그이 상상력의 문제일지 모른다. 그의 상상력이 염원도 만들고, 두려움도 만들고, 그리고 또 그것들을 한꺼번에 버무려서 쾌감을 증대시킨다. 염원은 그를 행복하게 하지만, 그는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두려움이 가세함으로써 그의 쾌감은 극대화된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는 그녀를 만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녀를 만나서 행복해지려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만족하고, 그것만으로 행복을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다시 더 냉정하게 말하면, 그러니까 그는 진정으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녀와의 만남을 원치 않고 있는지 모른다.

103
여자가 줄거리를 이야기하기 전까지만해도 사실 그는 그 책을 살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버렸다. 오답투성이일 것이 뻔한 참고서가 무슨 필요가 있으랴.

117
왜냐구요? 마리아! 어린애에게 왜 태어났느냐고 물어보십시오. 들에 핀 꽃에게 왜 피었느냐고 물어보십시오. 태양에게 왜 비추느냐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막스 뮐러 <독일인의 사랑>

121
사랑을 하면 예민해진다. 아무리 둔한 사람도 사랑을 하고 있는 동안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비상한 안테나를 달게 된다. 그리고 그 안테나는 오로지 사랑하는 한 사람에게만 집중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어떤 눈빛, 어떤 미소, 무의식적인 손의 움직임, 그리고 어투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사소하고 아무리 미세한 것도 놓치지 않는다. 이 안테나는 아무리 작은 변화에도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것이 사랑 속에 들어간 사람이 기쁨과 고통, 천국과 지옥을 숱하게 경험하게 되는 이유이다.

127
 그녀를 만나면 어떤지 나는 맨 먼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녀는 어떻게 나올끼? 혹시 화를 내지 않을까? 그보다 웃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왜 미안할까? 왜 그녀를 생각하면 마지막엔ㄴ 꼭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그래, 그때 나는 어리석었어. 나는 어린아이 같았고, 그녀는 누나 같았지. 나는 자기밖에 모르는 난폭한 어린아이 같았고, 그녀는 그런 동생 때문에 늘 피곤해 하는 가엾은 누나 같았어. 나는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렇게 옹졸했을까? 왜 그렇게 바보 같았을까? 왜 그렇게......다시 시작한다면 이젠 잘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Irreplacable

To the left, to the left
To the left, to the left

Mmmm...
To the left, to the left
Everthing you own in the box to the left
In the closet, that's my stuff
Yes, if I bought then please don't touch (Don't touch)

And keep talkin' that mess that's fine
But could you walk and talk at the same time?
And, it's my name that's on that jag
So remove your bags let me call you a cab

Standin' in the front yard tellin' me how I'm such a fool
Talkin' 'bout, I'll never ever find a man like you
You got me twisted

[chorus:]
You must not know 'bout me
You must not know 'bout me
I could have another you in a minute,
Matter fact, he'll be here in a minute, baby
You must not know 'bout me
You must not know 'bout me
I could have another you by tomorrow
So don't you ever for a second get to thinkin'
Your irreplaceable

So go ahead and get gone, call up that chick,
And see if she's home
Oops, I bet you thought, that I didn't know,
What did you think, I was puttin' you out for

Because you was untrue, rollin' her around in the car that I bought you
Baby drop them keys
Hurry up before your taxi leaves

Standin' in the front yard tellin' me how I'm such a fool
Talkin' 'bout, I'll never ever find a man like you
You got me twisted

[chorus:]
You must not know 'bout me
You must not know 'bout me
I could have another you in a minute
Matter fact, he'll be here in a minute, baby
You must not know 'bout me
You must not know 'bout me
I could have another you by tomorrow
So don't you ever for a second get to thinkin'
Your irreplaceable

So since I'm not your everything
How about I'll be nothing, nothing at all to you?
Baby I won't shed a tear for you (I won't shed a tear)
I won't lose a wink of sleep (A wink of sleep)
'Cause the truth of the matter is
Replacing you is so easy, hey...

To the left, to the left
To the left, to the left
Mmmm...
To the left, to the left
Everything you own in the box to the left
To the left, to the left
Don't you ever for a second get to thinkin'
Your irreplaceable

[chorus:]
You must not know 'bout me
You must not know 'bout me
I could have another you in a minute
Matter fact, he'll be here in a minute, baby
You must not know 'bout me
You must not know 'bout me
I could have another you by tomorrow
So don't you ever for a second get to thinkin'
(Baby hey yeah!)

[chorus:]
You must not know 'bout me
You must not know 'bout me
I could have another you in a minute
Matter fact, he'll be here in a minute

You can pack all your bags we're finished (You must not know 'bout me)
'Cause you made your bed now lay in it (You must not know 'bout me)
I could have another you by tomorrow
Don't you ever for a second get to thinkin'
You're irreplaceable?

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Life Is Wonderful

It takes a crane to build a crane
it takes two floors to make a story
it takes an egg to make a hen
it takes a hen to make an egg
there is no end to what I'm saying

It takes a thought to make a word
and it takes some words to make an action
it takes some work to make it work
it takes some good to make it hurt
it takes some bad for satisfaction

la la la la la la la life is wonderful
ah la la la la la la life goes full circle
ah la la la la la la life is wonderful
al la la la la

It takes a night to make it dawn
and it takes a day to make you yawn brother
it takes some old to make you young
it takes some cold to know the sun
it takes the one to have the other

And it takes no time to fall in love
but it takes you years to know what love is
and it takes some fears to make you trust
it takes those tears to make it rust
it takes the dust to have it polished (Yeah)

ha la la la la la la life is wonderful
ah la la la la la la life goes full circle
ah la la la la la la life is wonderful
ah la la la it is so (and it's so)

It takes some silence to make sound
and it takes a loss before you found it
and it takes a road to go nowhere
it takes a toll to make you care
it takes a hole to make a mountain

ah la la la la la la life is wonderful
ah la la la la la la life goes full circle
ah la la la la la la life is wonderful
ah la la la la la la life is meaningful
ah la la la la la la life is wonderful
ah la la la la la
it is so wonderful
it is so meaningful
it is so wonderful
it is meaningful
it is wonderful
it is meaningful
it goes full circle
wonderful
meaningful
full circle

Make It Mine

Wake up everyone
How can you sleep at a time like this
Unless the dreamer is the real you
Listen to your voice
The one that tells you to taste past the tip of your tongue
Leap and the net will appear 

I don't wanna wake before
The dream is over
I'm gonna make it mine
Yes I, I know it
I'm gonna make it mine
Yes I'll make it all mine 

I keep my life on a heavy rotation
Requesting that it's lifting you up, up, up, and away
And over to a table at the Graditude Café 

And I am finally there
And all the angels they'll be singing
I, la la la I, la la la I, la la la la love this 

Well I don't wanna break before
The tour is over
I'm gonna make it mine
Yes, I, I'll own it
I'm gonna make it mine
Yes, I'll make it all mine 

And timing's everything
and this time there's plenty
I am balancing
Careful and steady
And reveling in energy that everyone's emitting 

Well, I don't wanna wait no more
Oh, I wanna celebrate the whole world
I'm gonna make it mine
Oh yes I'm following your joy
I'm gonna make it mine
Because I, I am open
I'm gonna make it mine
That's why, I will show it
I'm gonna make it all mine
Gonna make, gonna make, gonna make
Gonna make it, make it, make it mine
Oh my, yes I'll make it all mine

You And I Both

Was it you who spoke the words
That things would happen but not to me
All things are gonna happen naturally
Oh, taking your advice and I'm looking on the bright side
And balancing the whole thing 

Oh, but at often times those words get tangled up in lines
And the bright light turns to night
Oh, until the dawn it brings
Another day to sing about the magic that was you and me 

Cause you and I both loved
What you and I spoke of
and others just read of
Others only read of the love
Oh, the love that I love
Yeah
Love-ah-love 

See, I'm all about them words
Over numbers, unencumbered numbered words
Hundreds of pages, pages, pages for words
More words than I had ever heard
And I feel so alive 

Cause you and I both loved
What you and I spoke of
And others just read of
And if you could see me now 

Oh love, love, you and I, you and I
Not so little, you and I anymore
Mmm hmm
And with this silence brings a moral story
More importantly evolving
Is the glory of a boy 

Cause you and I both loved
What you and I spoke of
And others just read of
And if you could see me now
Well then im almost finally out of, finally ou-ou-out of
Finally de de de de de de de, well I'm almost finally, finally
Well, I am free, oh I'm free 

And it's okay
If you had to go away
Oh, just remember the telephones
Well, they're working in both ways
But if I never, ever hear them ring
If nothing else
I'll think the bells inside have finally found you someone else
And that's okay
Cause I'll remember everything you say 

Cause you and I both loved
What you and I spoke of
And others just read of
And if you could see me now
Well, then I'm almost finally out of
I'm finally out of
Finally de de de de de de
Well I'm almost finally
Finally out of words

2010년 11월 22일 월요일

I'm yours

Well, you done done me and you bet I felt it
I tried to be chill but your so hot that I melted
I fell right through the cracks, now I'm tryin to get back
before the cool done run out I'll be givin it my best test
and nothin's gonna stop me but divine intervention
I reckon it's again my turn to win some or learn some

But I won't hesitate no more,
no more, it cannot wait
I'm yours

Well open up your mind and see like me
open up your plans and damn you're free
look into your heart and you'll find love love love love
listen to the music at the moment people dance and sing
Were just one big family
And it's our godforsaken right to be loved loved loved loved loved

So, i won't hesitate no more,
no more, it cannot wait i'm sure
there's no need to complicate our time is short
this is our fate
I'm yours

Scooch on over closer, dear
And I will nibble your ear

I've been spendin' way too long checkin' my tongue in the mirror
and bendin' over backwards just to try to see it clearer
But my breath fogged up the glass
and so I drew a new face and I laughed
I guess what I'd be sayin' is there ain't no better reason
to rid yourself of vanities and just go with the seasons
it's what we aim to do
our name is our virtue

But I won't hesitate no more,
no more it cannot wait
I'm yours

well open up your mind and see like me
open up your plans and damn you're free
look into your heart and you'll find love love love love
listen to the music of the moment come and dance with me
ah, la one big family
it's your god forsaken right to be loved, loved, loved, loved

open up your mind and see like me
open up your plans and damn you're free
look into your heart and you'll find love love love love
listen to the music of the moment come and dance with me
ah, la happy family
it's our god forsaken right to be loved loved loved loved

it's our god forsaken right to be loved loved loved loved
listen to the music of the moment come and dance with me
ah, la peaceful melodies
it's you god forsaken right to be loved loved loved loved

2010년 11월 14일 일요일

모든 죄악의 근본은 조바심과 게으름이다.

모든 죄악의 근본은 조바심과 게으름이다.

인슐린_비만세포

http://www.sportsnine.com/life01/board_view.php?id=1253&start=270&tablename=health
음식은 어떤 과정을 걸쳐 체지방으로 되나??
에너지원으로 되느냐 체지방으로 되느냐

비프스테이크나 구운 고기 등의 고지방식을 먹으면 소화와 흡수가 진행되는 동안 혈액에 변화가 나타난다.
혈액을 뽑아 원심분리기에 돌려서 보면 상층이 희고 탁해져 혈액 속을 중성지방이 다량으로 혈액 속에 흐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작은 알 모양으로 되어서 혈액 속을 흘러가는 지방의 경로는 심장이나 근육 등에서 에너지로 사용되어지거나 지방세포에서 체지방으로 축적되어지는 두 가지 경로로 이동한다.
지방 경로에서 에너지원으로 된 나머지가 지방 세포로 축적되어지면 살이 찌게 되는 것이다. 또한 당질도 과잉으로 섭취하면 체지방으로 모습이 바뀌어 몸 안에 쌓인다. 당질은 에너지로서 주로 사용되어지나 여분인 것은 체지방으로 축적되어진다. 그러므로 활동적으로 생활하고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면 영양소가 에너지로서 많이 사용되고 반대로 활동량이 적어지면 체지방으로 될 확률이 높아져 쉽게 살이 찐다고 말할 수 있다.

지방세포를 살찌게 하는 인슐린의 정체
영양소가 체지방으로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바로 '인슐린'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슐린은 지방의 합성을 촉진하는 호르몬으로써 주목해야 한다. 인슐린은 혈액 중의 혈당치 상승시키는 녹색신호로 췌장에 있는 랑게르한스섬의 베타세포에서 분비된다. 즉 혈액 중의 혈당(포도당)의 농도가 높아지면 식후에 당을 세포로 이동시키는 운전수 역할을 하는 인슐린의 분비도 왕성해 진다. 인슐린의 분비도 왕성해 진다. 인슐린과 관련이 깊은 당질이 체지방으로 되기까지의 경로에서 살펴보면 우선 인슐린이 분비되면 평소는 닫혀 있던 지방세포의 문이 열리고 포도당이 지방세포 내로 갑자기 헤치고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지방세포 내로 받아들여진 포도당은 효소의 작용으로 중성지방으로 합성된다. 인슐린은 혈당을 지방세포의 속으로 보내는 것 뿐만 아니라 세포 내에서의 지방 합성을 촉진하는 작용도 있다.
포도당에서 지방으로의 합성은 간에서도 이루어진다. 그리고 간에서 합성된 지방은 초저밀도 지단백(VLDL:Very Low Density Lipoprotenis)으로 일단 혈액 중으로 방출되어져서 심장이나 근육, 지방조직으로 운반되고 지방조직으로 축적되어 체지방이 된다.
인슐린은 혈중 VLDL지방이 심장이나 근육으로 합성을 억제하고 지방 조직의 합성을 활성화하는 작용으로 체지방 축적에 관여하고 있다. 또한 식사로 받아들인 지방이 체지방으로 되는 과정에서도 인슐린이 관여한다. 식사 중의 소화 흡수된 지방은 카일로마이크론(chylomicron)지방으로 되어서 혈중 남겨지고 이때 인슐린은 지방세포로의 합성을 촉진한다.
이런 과정에 관여하는 지단백 분해효소인(lipoprolipase) 혈중지방을 지방산으로 분해하면서 지방세포의 속에서 끌어들이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인슐린은 지방세포의 지단백분해효소를 활성화하는 한편 심장이나 근육으로의 지단백분해효소의 합성을 억제한다.
이와 같이 지방세포는 인슐린의 영향으로 인해 살쪄 가는 것이다.

지방이 축적되는 메카니즘

저장지방의 원천은 혈중에 있는 지방과 지방조직 그 자체가 탄수화물에서 유래된 포도당에서 합성되는 지방이다. 또한 혈중지방은 음식에서 섭취된 지방이 소화·흡수되어 나타나는 카일로마이크론과 간에서 탄수화물의 포도당과 과당 등에서 합성된 초저밀도지단백(VLDL:Very Low Density Lipoprotein)으로 2 종류가 있다.
이런 혈중지방은 심장과 근육 그리고 지방조직에 흡수되어 심장이나 근육에 흡수된 경우에는 에너지 생산에 사용되어 탄산가스나 물로 분해되지만, 지방조직에 흡수되면 저장지방으로 축적 된다.
어떤 조직에 혈중 지방이 흡수되는 가는 각각의 조직의 모세혈관에 잇는 지단백분해쇼호(lipoprolipase)라고 하는 효소의 기능에 따라 호르몬이 조절된다. 그 중에서 저장 지방의 축적을 촉진하는 것이 인슐린이다.
인슐린은 심장과 근육의 지단백분해효소의 활성을 약하게 하고 반대로 지방의 지단백분해효소의 활성을 증가시킨다. 즉 인슐린의 분비가 활발해지면 지방 조직으로 인한 혈중지방의 흡수가 촉진되어 저장지방이 늘어나게 된다.



인슐린을 방해하는 인자 : 글루카곤
글루카곤은 인슐린의 적수이다. 인슐린과 마찬가지로 췌장에서 분비되는 글루카곤은 비만을 부추기는 활동을 억제한다. 인슐린이 당질 섭취 후에 혈액에 흐르는 지방 분자들을 허리군살 쪽으로 몰고 간다면, 글루카곤은 지방을 지방 저장소에서 분해시켜 에너지로 사용해버린다. 글루카곤은 단백질로 이루어진다.
즉 단백질을 섭취하지 않으면 글루카곤의 분비가 감소하여 지방세포가 우리몸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조건 식이제한을 하는 것은 우리 몸을 더 헤치고 체지방의 분해 능력을 떨어 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http://www.yakup.com/pharmplus/index.html?mode=view&pmode=&cat=25&cat2=238&nid=1224&num_start=0

비만관련 인슐린저항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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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2-15 16:43     최종수정 2006-11-09 17:13
지방세포…인슐린민감성에 영향 미치는 여러물질 분비
유리지방산…혈액 중 포도당 농도 상승의 원인 되기도


비만은 인슐린저항성과 2형 당뇨의 주요 위험인자이다. 지방세포는 말초조직의 인슐린 민감성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물질들을 분비한다.

지방세포가 인슐린저항성과 관련하여 분비하는 것으로 알려진 물질들로 렙틴(leptin), 종양괴사인자(tumor necrosis factor a), Acrp30(adipoQ 혹은 adiponectin이라고도 불리움), 인터류킨 6(interleukin 6) 등이 있다.

로지글리타존(상품명은 아반디아)이 속한 타이아졸리딘다이온(thiazolindinedione, TZD) 계열의 항당뇨약들은 지방세포에서 가장 많이 발현되는 핵 내 호르몬 수용체인 PPARg (peroxisome proliferator-activated receptor g)에 결합함으로써 여러 인슐린 반응성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한다.

마우스 지방세포에서 TZD 계열 약물에 의해 발현이 억제되는 유전자를 찾는 중에 2001년 1월 University of Pennsylvania 의과대학의 Steppan 연구팀에서 resistin이라고 하는 지방세포 특이 분비 호르몬을 발견하였다. Resistin은 비만인 상태에서 혈액 중 농도가 증가하며 인슐린 작용에 길항하는 물질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마우스에서 TZD계 약물, 비만, resistin간에는 분명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이제까지 문헌상에 보고되고 있다.

인슐린저항성은 인슐린 반응성 조직들(지방조직, 근육조직, 간 조직, 심근 등)이 인슐린에 정상적으로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로 정의할 수 있다.

비만과 관련하여 인슐린저항성은 주어진 인슐린농도에서 간 조직에서 과다한 당의 생성과 골격근과 같은 말초조직으로 당이 유입되는 정도가 감소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간 조직에서 지방분해에 의해 유리된 과다한 유리지방산 (free fatty acid, FFA) 역시 2형 당뇨환자에서 인슐린저항성의 발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리지방산은 산소에 대해 포도당과 경쟁하며 근육조직 등으로 포도당이 유입되는 것을 방해하여 결과 혈액 중 포도당 농도가 상승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같은 현상을 Randle cycle이라고 함).

또한 유리지방산은 간 조직이 인슐린을 유입하는 것을 방해하여 간에서 당 생성이 촉진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렙틴…기아반응과 관련된 대사나 다른 내분비계 조절
지방세포의 호르몬 에너지균형을 결정짓는 역할 담당


지방조직은 체내에서 중성지방(triglyceride)의 형태로 에너지(연료)를 저장하는 가장 큰 기관이다.

절식상태나 그 외 에너지가 필요한 상황에서 지방조직에 저장된 에너지는 빠르게 사용된다. 지방조직내에서 이같은 에너지 상태의 변동은 여러 호르몬에 의해 조절을 받는다. 예를 들어 췌장의 인슐린, 교감신경계의 카테콜라민, 부신의 부신피질호르몬 등이 그것이다.

최근까지 지방세포는 연료 항성성을 유지하는데 수동적인 역할만 있을 뿐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고 비만은 과잉 에너지 공급의 결과라고 인식되어져 왔다.

그러나 이제는 지방조직의 내분기 기능이 에너지 균형을 결정 지워 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방세포에서 생성되어 분비되는 렙틴이라는 펩타이드성 호르몬의 발견은 지방조직의 내분비 기능을 확인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렙틴이 결핍된 마우스(ob/ob mouse)와 사람이 발견되었으며 이들은 비정상적으로 비만을 나타내고 인슐린저항성을 나타내 결과 2형 당뇨와 유사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렙틴수용체에 변이가 있는 마우스(db/db mouse)와 사람 역시 발견이 되면서 지방세포가 렙틴의 표적조직인 시상하부를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내분비기관의 기능을 가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중추신경에 대한 렙틴의 작용은 포만감을 조절할 뿐 만 아니라 기아(飢餓)반응에 관련된 대사나 다른 내분비계를 조절하는 원심성 신경기능도 가지고 있다.

렙틴의 발견은 지방세포가 분비하는 다른 신호전달 물질들을 발견하고자 하는 연구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만인 사람에서 혈액 중 상승되어 있는 유리지방산이 그 중 하나로 유리지방산의 상승은 말초조직에서 인슐린의 작용성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물질이다.

그 외 지방조직에서 분비되는 것으로 알려진 물질들 중에는 Acrp30, tumor necrosis factor a, adipsin, plasminogen activator-inhibitor, acylation-stimulating protein, interleukin 6 (IL-6), IL-8, agouti protein, transforming growth factor, angiotensinogen, adipophilin 등이 있다.

이들 사이토카인이나 호르몬들 대부분은 포도당 항성성을 조절하는 역할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Resistin:최근에 발견된 지방세포-유리 폴리펩타이드

2010년 10월 31일 일요일

아이러니한 기륭사태, 하지만 당신이 기륭노동자들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

9월 23일에 방영된 PD수첩 “기륭전자 투쟁 1127일, 그 끝은 어디인가?”http://www.imbc.com/broad/tv/culture/pd/vod/index.html?kind=text&progCode=1000836100369100000&pagesize=15&pagenum=1&cornerFlag=1&ContentTypeID=1 를 보면서 친구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프로그램에선 딸아이가 교통사고가 났는데도 해고당할까봐 퇴근 전까지 찾아가지 못했던 사연 등 직접 비슷한 현장에서 일해 본 사람이 아니라면 차마 상상하기 힘든 사연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친구는 (나와 마찬가지로) 정서적인 부분에선 그것에 대해 경악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보호법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고 구로디지털단지의 수많은 파견업체 노동자들의 실상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또 다른 반응을 보였다. 기업 입장에서 따져보면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투였다. 법이 저런 식으로 되어 있다면, 자신이 경영자가 되더라도 비정규직을 고용할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친구는 장래에 정규직이 될 수도 비정규직이 될 수도 있는 처지이지만 지금껏 쌓아온 것과 앞으로 하려는 일로 봐서는 아무래도 구로디지털단지에서 파견직 노동자 일자리라도 구해야 하는 처지로 떨어질 사람은 아니다. 그것이 그의 ‘경악’의 감정이 냉철한(?) 기업주의 시선 아래 정돈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가 기업주로 살아갈 가능성 역시 높은 것이 아니고 게다가 생산직 파견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주가 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그런데도 그렇게 쉽사리 기업주의 시선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 역시 이해는 가지 않았다. 그 친구는 경영학도까진 아니지만 경영학을 많이 배워야 하는 전공의 대학생인데, 그것이 그의 ‘객관적 판단’을 그쪽으로 고정시킨 이유 중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경영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이 학문의 효용을 총체적으로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하지만 자본가가 될 수 없는 수많은 대학생들이 그런 식으로 기업주의 시선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현실은 기가 막혔다. 앞으로의 삶에서 노동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많은 이들이 왜 ‘노동학’이 아닌 ‘경영학’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


어쨌든 나는 이 친구와 대화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다른 대학생들과도 이 문제에 관해서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그가 평균적인 대학생들보다 사회문제에 특별히 관심이 덜한 것도 아니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수성이 없는 편도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기업주가 자신의 이득을 따를 때 저런 식의 고용형태를 취하는 것이 납득할만한 일이라면 열악한 처지에 처한 노동자들이 단체행동에 나서는 것도 당연히 납득할만한 일이 될 거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납득할만한 일, 하지만 비인간적인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친구는 이 설명 자체엔 납득했지만, 운동을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과연 지금의 행동들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마침 프로그램에서는 1천일이 넘는 기간 동안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별별 방법을 다 써봤지만 효력이 없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참이었다.


이런 식의 회의주의는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닌 것 같다. 모든 종류의 투쟁은 일종의 ‘지는 싸움’이다. 하지만 그 지는 싸움들이 쌓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변화도 바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싸움은 타인들이 요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늘도 또다른 기륭전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당하겠지만, 그들에게 우리는 투쟁을 요구할 수가 없다. 하지만 기륭분회의 노조원들은 1천일을 넘게 투쟁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그녀들은 이 엄혹한 사태의 끝을 보려고 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밖에 찬사를 보내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조금 깔고 말하자면, “자신의 욕망에 대해 양보하지 않는” 라캉적 의미의 윤리적 주체가 된 거다. 냉철한 경제학도라면 계속해서 투쟁하는 그녀들의 행동을 매몰비용(sunk cost)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려 들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투쟁했고 그 비용이 쌓여왔기 때문에 계속해서 싸우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투쟁하는 노조원 10명이 아닌 복직을 원하는 노조원 22명을 위해 교섭을 벌이는 그녀들은 이미 합리적인(?) 계산의 차원을 벗어나 있다. 그녀들은 한국사회의 비정규직 문제 그 자체를 위해 싸우고 있다. PD수첩 말미에 나온 노무사의 말처럼, 기륭전자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떠한 법과 제도의 보호도 받지 못한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다. 지금 그녀들이 투쟁의 최전선에 있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에 대해, 침묵했던 우리들은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그것이 부끄럽다면, 끝까지 가겠다는 그녀들의 투쟁에 대해 끝까지 같이 가겠다는 사람이 몇 명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경영학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륭분회’의 이름으로 투쟁하는 기륭전자의, 아니, 인터넷에 넘치는 회사 알바들의 말을 빌리자면 (법적으로는) 기륭전자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던 제각각의 파견업체의 노동자들이었던 그녀들의 투쟁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것은 ‘경영혁신’을 방해하는 불순한 이들의 난동일 뿐이다. 하지만 경제학으로 넘어간다면 어떨까? 청와대와 국정원과 경총은 기륭전자와 노조원들의 협상을 한사코 방해하고 있다. 요구조건을 들어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국가는, 도대체 어떻게 국민경제를 꾸려나갈 생각일까? 기륭전자 사태에 관심을 가지다가 현대기아차 모닝을 생산하는 동희오토라는 업체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생산라인 전원이 비정규직인 사외 하청업체들이 모인 공장이라고 하며, 이 공장 역시 과거 기륭전자처럼 최저임금보다 10원이 많은 임금을 준다고 한다. 이런 고용형태가 일반화되어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만들어진다면, 이 기업들은 누구에게 물건을 팔 생각일까? 전량을 수출할 자신이 있을까? 현대자동차 정규직은 현대자동차를 살 수 있다. 하지만 동희오토의 노동자는 현대기아 모닝차를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대기업이 쌓은 부가 아래로 흘러내린다는 적하효과(Trickile-down effect)는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국은 외국인들의 효용을 위해 종사하는 일부의 수출대기업 정규직들만 그럭저럭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살아가는 나라가 되었다. 나머지 기업들은 이 대기업들에게 빨대처럼 쪽쪽 빨아 먹히거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한 가난흔 비정규직들의 주머니를 노려야 하기 때문에 굶어죽기 직전이다. 이런 식으로 국가가 성장해봤자 무슨 소용이냐는 질문은 차치하고, 이런 식으로 성장이 계속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걸까?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대에 내수시장이 아닌 수출만으로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정부관료들도 그렇게 믿지는 않겠지만, 기껏해야 뉴타운과 대운하나 건설해 부동산 경기나 진작시켜야겠다고 생각하는게 현실이다.


친구는 기업도 그렇지 않으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에 그런 식의 파견직 노동자를 쓰는게 아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2005년 당시의 기륭전자가 200억 흑자기업이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파업개시 당시 기륭전자의 생산직 파견직 노동자는 210명이었다.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문제일까. 4대보험 보장과 약간의 휴가보장의 효용을 금전적으로 환산하여 1인당 30만원에서 50만원으로 계산해보자. 기륭분회 노조원들의 문제가 임금의 문제는 아닌, 딸아이가 사고를 당했을 때 병원으로 달려가도 해고당하지 않는 최소한의 고용안정성의 문제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회사가 추가적으로 지불해야 할 비용은 6천에서 1억이 된다. 60억에서 100억도 아니다. 이 비용이 아까워 그들은 파견직 노동자를 고용했다. 이건 비용절감이란 말도 아깝고, 그저 남들이 500원에 사먹는 새우깡을 600원에 사먹기는 싫다는 심보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들이 파업을 일으킨 그 순간에도, 1천일이 지나 손실이 누적된 지금에도 회사는 타협하려 들지 않는다. PD수첩에 나온 회사 관계자는 “그런 요구를 들어주면 나라가 망한다.”며 나라걱정이나 하고 있다. 왜 자기네 기업을 걱정하지 않고 나라걱정이나 하는 걸까? 한가하다는 얘기다. 여기에서 노조파업이 잘나가는 중소기업을 망쳤다고 주장하는 조선일보류의 시각이 얼마나 허위적인지가 드러난다. 정말로 망하는게 두려웠다면 왜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일까?


방금 기륭전자의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속보가 들려왔다. 기륭전자는 이번 협상이 결렬될 경우 협상 자체를 경총으로 넘길 거라고 공언해 왔다. 이에 맞서 금속노조는 기획되었다가 잠시 연기된 ‘시리우스 원정투쟁’을 할 예정이다. 기륭전자는 위성송신기 등을 전량 해외로 납품하는 회사였고 미국의 네비게이션 회사인 시리우스사가 최대의 바이어라고 한다. 기륭전자는 시리우스의 핑계를 대면서 노조원들의 정규직화 전환을 거부하고 있는데, 시리우스사가 정말로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압력을 넣었는지를 질의하는 것이 이른바 원정투쟁의 목적이다. 사실 시리우스가 무슨 요구를 했을리는 없다. ‘노조의 투쟁 탓’이 아니라 개별기업이 아니라 전체 부르주아의 이익을 대변하려던 경영진의 옹고집 탓에 수백억 적자기업으로 전환된 기륭전자는 이 사태를 해결할 권한이 있다. 이 사태의 아이러니는 오히려 기륭문제는 경영진의 의지만 있으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친구는 모든 기업이 기륭전자의 상황과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많은 하청업체들은 대기업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물품단가를 정해서 겨우 수지타산을 맞춰야 하는 현실이고, 더 많은 중소기업은 그러한 하청업체도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방치하는 법률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해결되기 힘들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키코 등에서 손해를 입은 중소기업들은 엄혹한 세월을 보내겠지만, 대기업들은 그렇지 않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강변하면서 비정규직의 필요성을 강변할 것이다. 비정규직 보호법의 비정규직 고용시한인 2년을 4년으로 늘리겠다는 안도 그 일환이다. 하지만 모든 종류의 정책에서 ‘대기업 우선’을 지지하는 그들이 정말로 중소기업을 대변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그럴 리가 없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결의 요구는 중소기업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기업생태계 문제를 지적하면서 오히려 중소기업을 도와주려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만, 이 문제를 포기한다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없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경제학에서 정치학으로 나아가게 된다. 개별주체의 이익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고, 공동체 내에서 가장 약자인 이들이 어느 정도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려는 욕망을 우리는 정치적 욕망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롤즈는 자신이 사회의 모습을 고민할 때 그 사회의 어느 위치에 처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룰을 세팅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단지 개인의 이득만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사회문제에 대해 논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이 손해를 보는 집단에 속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가 팽배할 것이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게임이론에 따라 집단행동의 유의미성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지속될 수 없는 체제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은 정치적 행동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이다. 한국의 자본가들은, 청와대와 국정원과 경총을 동원한 것에서 보이듯 이미 기륭투쟁을 한 사업장의 문제로 보지 않고 한국 사회의 시스템을 세팅하는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르주아들은 단합했는데 프롤레타리아트는 분열하는 꼴이다. 우리는 기륭투쟁의 정치성을 깨닫고 한 사회의 지배계급 그 자체의 최소한의 양보를 위해 노력하는 그녀들의 투쟁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황장엽과 리콴유, 어떤 반민주주의자들의 판타지

한국사회의 비정규직은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유연화의 경제논리를 넘어 마치 봉건적 신분제를 연상케하는 기업주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있다는 것.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세상이 잡음없이 매끈하게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문제는 이제 취업하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바로 그러한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지하는 데 있다. 어리석게 죽음을 무릅쓰고 투쟁하는 기륭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의 방파제다. 그들을 돕지 않는다면 파도는 방파제를 넘어 모두를 덮칠 것이다.

황장엽과 리콴유, 어떤 반민주주의자들의 판타지

1983년생, 안티조선 운동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인터넷 논객’이란 허명으로 떠돌다가 현재는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 저서로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텍스트, 2009)와 <뉴라이트 사용후기>(개마고원, 2009), 공저로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산책자, 2009), <진보의 재탄생 : 노회찬과의 대화>(꾸리에, 2010) , <리영희 프리즘 : 우리 시대의 교양>(사계절, 2010) 등이 있다.
BY : 한윤형 | 2010.10.12 | 덧글수(7) | 트랙백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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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황장엽은 노동당 창건 65주년 되는 날에 세상을 떠났다. 적국으로 망명 온 (전향도 하지 않은) ‘주체사상의 창시자’의 죽음은 한반도 이북에 있는 권력집단의 정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조선노동당은 황장엽과 함께 욕실에서 사망했고, 저 텔레비전 화면 속의 열병식의 주최자는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회의하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온 황장엽은 주체사상의 체계화에 기여를 했지만, 조선노동당이 ‘맑스-레닌’을 벗어던지고 ‘김일성의 당’임을 선포하게 되는 시대 변화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어찌됐건 황장엽의 망명은 북한 체제가 그들이 말하는 ‘우리식 공산주의’에서도 이탈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장례는 ‘통일사회장’으로 치러지고 있고, 정부는 그를 대한민국을 위해 몸바쳐 싸운 이들이 묻혀 있는 대전 현충원에 안장하고 싶어 한다. 남한 망명 후 여생을 암살의 위협 속에서 살아온 그에게 인간적 정리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황장엽이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을 공헌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황장엽은 수십 년의 생애를 대한민국을 절멸하려는 욕망을 가진 저 북쪽 ‘공화국’의 ‘리론가’로써 호의호식하며 살았다. 그가 망명 후 북 권력집단의 추악한 실체를 폭로한 ‘공로’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자신의 과거를 반성한 것은 아니다. 반성하기는커녕 자신이 만든 주체사상은 문제가 없는 아름다운 사상이었는데, 김일성이 이것을 개인적인 우상숭배에 활용하면서 북한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는 식의 주장을 해왔다. 안기부는 황장엽이 망명한 직후 ‘황장엽의 주체사상’에 대해 설명하는 해설서까지 내주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황장엽에 대한 한국의 자칭 ‘보수 우파’들의 반응은 그들의 머릿속에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그들은 곧잘 자신들을 ‘자유민주주의자’라고 칭하지만, 이때 그들이 말하는 것은 이념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북한 체제를 부정한다는 차원에서의 ‘자유민주주의’다. 그들은 대체로 ‘밥 먹이는 독재자’를 찬양의 대상으로 삼고, ‘밥 굶기는 독재자’를 경멸하려 든다. 이것이 그들이 박정희/전두환과 김일성/김정일을 변별하는 방식인 것이다. 따라서 황장엽이 북쪽에서 가지고 내려온 ‘주체사상’이 지도층에 대한 인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이념이란 것은 이들에게 큰 문제는 아니다. 이들에게 문제는 김정일이 밥을 굶기고 있다는 것이고, 밥을 굶기지 않으려면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수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민들이 사유재산을 늘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동하면서 북한 김정일 체제를 규탄하는 정부의 입장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 “자본주의와 결합한 주체사상 이념의 정권”이 한국 사회의 ‘보수 우파’들의 바라는 사회상이라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이들에게 반대하는 소위 민주화 세력, 김대중과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사회는 어느 정도에 와 있는가? 황장엽이 사망하던 날의 열병식과 함께 공식화된 북한 체제의 ‘3대 세습’ 문제는 이미 그 이전부터 남한 ‘진보 세력’의 화두가 되어 있었다. 북한 체제에 대한 내정간섭이 부당하다는 민주노동당의 논평에 대한 경향신문 사설의 비판이 있었고, 이에 맞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국가보안법의 논리’로 사태를 재단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몇몇 지식인들이 갑론을박했지만 그중 가장 놀라운 것은 프레시안에 실린 역사학자 김기협씨의 글이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국 현실에 맞는 ‘진보’를 추구했다고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노무현이 보수면 뭐 어떠냐?’라는 앞뒤가 안 맞는 질문으로 참여정부를 비판하는 ‘좌파’들을 질타했던 이 노무현 지지자는, 싱가포르 리콴유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세습은 절대악이 아니기 때문에 북한의 권력세습 문제를 우리 잣대로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김기협의 주장은 좌파나 진보주의자들은 물론, 김대중·노무현 지지자들의 일반적인 정서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발언에 경악을 금치 못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김기협의 발언은 ‘인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 리콴유의 권력세습’으로 ‘인민을 굶기는 김정일의 권력세습’을 옹호할 수는 없다는 기본적인 오류 이상의 큰 의미를 지닌다. 이를테면 소위 ‘민주화 세력’이 한국 보수 우파들이 독재자를 변별하는 방식과 다른 방식의 잣대를 가지고 있는지가 의문시 되는 것이다. 대체로 리콴유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들은 박정희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해왔다. 박정희의 ‘위인전’을 완성한 월간조선 전 편집장 조갑제씨 같은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리콴유와 박정희는 ‘지도자’를 좋아하는 아시아인들이 흔히 내세우는 ‘위대한 지도자’들이다. 우익들이 박정희/전두환과 김일성/김정일을 변별하는 방식이 ‘밥’이라면, 김기협에겐 무엇이 있는가?

차라리 김기협이 아예 박정희까지 긍정해 버린다면 그의 발언을 ‘소신있는 것’으로 치부할 수 있다. 박정희의 경제성장의 공로를 인정하되 그의 방식이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사회에선 통용될 수는 없고 이제 우리에겐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김기협은 <뉴라이트 비판>에서 이승만과 박정희를 긍정 평가하는 뉴라이트 역사학자들을 매섭게 쏘아붙인 사람이다. 뉴라이트를 비판한다고 박정희를 전면 부정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김기협의 저술에서 박정희의 경제성장의 공로를 인정하는 구절을 찾지는 못하였다. 더구나 다른 것도 아니고 리콴유의 ‘세습’을 옹호하는 것은 박정희의 경제성장의 공로를 옹호하는 것보다도 훨씬 독재자에게 친화적이다. 언론자유를 부정하고 도시의 청결함에 과잉집착하는 그의 통치행위는 전두환의 3S정책보다도 더 이전에, 장발족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던 박정희 시대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발전된 자본주의와 결합한 박정희식 ‘한국적 민주주의’의 체제”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적어도 한국 사회는 3S 시대를 넘어 문화산업 정책을 펼쳐낸 지난 ‘잃어버린 10년’ 동안 싱가포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자생적인 대중문화를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어떤 진보주의자들은 이 대중문화의 자본친화성에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대중문화가 김기협이 그렇게 신봉하는 ‘삶의 질’을 높여주는 있다는 점도 사실이다. 김대중은 1990년대 후반 ‘아시아적 특수성’을 주장한 리콴유에 맞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동반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더랬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어느 노무현 지지자의 리콴유 찬양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어떠한 지반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를만큼 몰역사적인 거다.

이 두 개의 반민주주의적 판타지의 실상을 들춰보니 현기증마저 느껴진다. 주체사상과 한국적 민주주의의 대립, 한반도의 1970년대를 남북으로 가르던 그 대립이 한반도 남부를 동과 서로 가르며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웃긴 것은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이들이 ‘주사파’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믿는 그 집단인 것이고, ‘한국적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이 ‘독재자의 딸’에 이를 벅벅가는 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 김기협의 논리는 김대중·노무현 지지자들의 일반적인 논리가 아니고, 김대중·노무현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서적으로라도 박정희를, 리콴유를, 그리고 박근혜를 싫어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김기협이 가지고 있는 1970년대의 환상은 우리가 말했던 ‘민주화’가 민주주의 이론을 제대로 체현한 것이 아니라, 독재자들의 ‘무능함’을 민주화 세력이 대체할 수 있다는 차원의 논리였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와 리콴유를 규탄할 때라도, 김대중과 노무현을 예찬할 때 우리는 은연 중에 그런 관점을 가지고 그들을 과거의 독재자들과 비교한다. 그리고 두 민주화 세력의 지도자들이 독재자들보다 ‘유능’했던 점은 역시 ‘시장자유’를 더 제대로 인정했다는 점에 있는 바, 우리의 민주화는 곧바로 ‘신자유주의’를 향해 돌진하게 되는 것이다. 김기협의 ‘오버’는 그가 속한 집단의 일반적인 정서를 대변하지 못하지만, 어째서 민주화 세력의 지지자들이 ‘신자유주의 개혁’을 앞장서서 추진하고 지지하게 되었는지를 드러내는 외설적인 대상이다.

그리하여, 2002년에 노무현을 지지했던 이들은 2007년엔 이명박을 지지하게 되었던 것이고, 오늘날엔 다시금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를 이명박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국가대표 판타지'의 그림자

경향신문 '2030콘서트'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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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여지 없이 지구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축제, 월드컵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시차를 무시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고, 경기를 즐기고 있을 거다. 이번 월드컵은 전통의 축구 강호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일찌감치 짐을 쌌고, 한국과 일본이 유럽팀들을 격파하고 16강에 가는 등 유럽팀의 약세가 눈에 띈다.


어째서 천문학적인 몸값의 선수들이 즐비한 유럽의 강팀들이 남미, 아시아, 혹은 유럽의 축구 약소국들에 고전하는 것일까? 어찌보면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결과 같다. 자국의 축구리그가 융성한 유럽의 강국들은 클럽팀의 일정이 월드컵 준비보다 더 중요하다. 말하자면 자본이 국가 위에 있는 셈이다. 반면 대표선수 중 몇 명만이 빅리거인 축구세계의 ‘준주변부’ 국가들은 국가대표팀의 조직력을 강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빅리그에서 배워온 몇 명의 기술력을 중심으로 단결한다. ‘대표팀’의 기량으로 보면 이들이 ‘축구 강국’들을 능가하게 될 수 있는 요인이 있는 것이다.


국가의 부름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우리 대한민국은 이러한 ‘국가대표’의 조직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한국의 국가대표가 국내리그의 기량에 비해 국제대회에서 유난히 좋은 성적을 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가령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생각해보라. 한국 국가대표 야구팀은 종종 미국이나 일본팀을 이긴다. 인프라나 리그 수준은 상대가 안 되지만 막상 국가대표끼리 붙으면 실력은 비등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이런 광경을 보며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대표 판타지’는 생활인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슬픈 것이다.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스포츠를 즐기다가 리그에 열광하고 훌륭한 선수를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국가대표팀을 만들기 위해 시민들의 생활과 떨어진 ‘별동대’를 키워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축구 같은 인기 스포츠는 형편이 좋지만, 시민들이 거의 보지도 않는 비인기종목 선수들의 생활이 어떠한지 우리는 알고 있다. 전설의 배드민턴 스타 박주봉은 나라 밖에만 나가면 금발소녀들의 비명소리를 들었지만 조국에선 올림픽 때나 뉴스에 나왔다. 여자핸드볼팀의 선전을 다룬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대표팀 경기’를 위해 육성된 선수들이 어떤 생활을 견뎌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래도 스포츠를 보며 대표팀에 열광하는 것은 폐해가 적은 편이다. 국가대표 판타지를 다른 영역에 적용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과거 한국은 경제개발을 위해 ‘산업역군’들을 ‘국가대표’와 같은 것으로 상징화했다. 그 결과 우리는 삼성전자가 거둔 천문학적 영업이익이나 삼성 반도체와 휴대폰의 세계시장 제패를 올림픽 금메달이나 월드컵 16강과 비슷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삼성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이 백혈병에 걸려 죽는다는 것을 고발하는 일은 김연아나 박태환을 비난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 된다. 콜트나 기륭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을 해외에 고발하면 수구언론들은 사설에서 난리를 친다. 국내 일은 국내에서 해결해야지 해외에 나가서 우리 기업의 영업을 방해해선 안 된다는 거다. 세계시장의 순위보다, 우리 노동자들을 배려하는 기업이 성장하는 것이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는 언급되지도 못한다. ‘국가대표’를 응원해야 하니까.


국가대표 판타지와 관련해 최근에 날 가장 웃겼던 건 참여연대를 “어느 나라 국민이냐”고 비난한 총리님이다. 고명하신 경제학자께서 외교와 월드컵을 헷갈리시면 경제학도들 속상하지 않을까? 진짜 ‘대표’라면 ‘교체’해 달라고 ‘악플’이라도 달련만, 이럴 때면 웃다가도 우울해진다.

우리는 왜 ‘지는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일까.

 
2005년 당시 기륭전자 생산라인의 파견노동자들은 최저임금보다 10원 더 받으면서 일하고 있었다. 툭하면 해고당했고, 해고방식은 무려 ‘핸드폰 문자메시지’였다. 딸아이가 교통사고당했는데 해고당하는게 두려워 잔업까지 마치고 병원에 가야 했고, 몸이 아파 견디지 못해 쓰러져 앰뷸런스에 실려 갔는데도 해고당했다. 견디다 못한 그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노동부는 “파견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사측이 위반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500만원 벌금을 매겼다. 기륭전자는 성실히 벌금을 납부하여 법적인 의무를 다한 뒤, 노조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해고시켜버렸다. 1,200일이 다 되어가는, 비정규직 운동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기륭사태의 전모다.
 

법에 호소했지만 법원은 7번이나 그들이 당한 해고가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판정했다. 국회의원들에게 호소하여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의 중재로 사측과 협상을 벌였지만 결국 결렬됐다. 제 몸을 해하는 단식에 들어가 분회장은 94일이나 단식을 해서 목숨이 위태로웠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단식의 와중에 기륭의 투쟁에 함께 하려는 네티즌들의 움직임이 생겨났고, ‘릴레이 동조 단식’이 성행했다. 시위현장에 용역들이, 전경들이 들어와 분회원들을 끌어내는 와중에 함께 하다가 다친 이들도 많았다. 
 

현장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분회원들의 처지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이 싸움 자체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냈다. 입법부의 중재도, 사법부의 판결도 도움이 되지 못했고 정부는 국정원을 통해 외려 사측에 노동자들의 입장을 수용하지 말라는 압박을 넣었다고 한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도 비슷한 방식의 압력을 넣고 있는 걸로 안다. 밥을 굶어도, 철탑으로 올라가도, 기륭이 물건을 납품하는 미국의 시리우스사 앞에서 삼보일배를 해도,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람 하나쯤 죽어도 눈하나 까딱하지 않을 이들을 ‘적’으로 둔 이상, 이기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무조건 패배할 거라고 예측하는 것이 합리적인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싸움에 동참해야 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언제까지 싸울 것인지, 얼마만큼 얻어내려고 목표해야 하는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어느 정도인지를 조심스럽게 질문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질 확률이 높은 싸움은 그런 식으로 ‘전략’을 짜서 참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언제까지 싸울 것인지는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는 분회원이 결정할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는지는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아마 우리는 패배하고 패배하고 또 패배할 것이다. 그래서 다시금 우리는 왜 지는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일까, 라고 묻게 된다.
 

정답은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싸움은 패배할지라도 다른 싸움을 위한 발판이 된다. 누군가가 지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영원히 이길 수 없다. 이런 서술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다른 방식으로 말해보자. 대공황 이전 미국경제가 지금의 한국경제와 비슷한 룰로 돌아가던 시절, 대안적인 체제를 제시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다른 말을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하지만 대공황이 터지고 뉴딜 정책이 시작되자, 법원은 하루에 십여개의 법률을 통과시켰다. 지금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제안들이 위기상황에 몰리자 한꺼번에 통과된 것이다. 만일 이때에 여러 사람들의 ‘지는 싸움’으로 축적된 다른 종류의 대안들이 축적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사회는 훨씬 더 큰 비용을 치르면서 그 위기를 극복했어야 할 것이다. 한 세대의 소년들에게 유행한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이란 소설은, 민주정치의 지지자들이 전제왕조와의 우주적 패권 투쟁에서 패배한 후 아주 미미한 승리를 거두어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는 자치령을 할당받으면서 매듭된다. 그들의 지도자는 훗날 전제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날이 왔을 때 인류가 다른 대안을 쉽게 찾아낼 수 있도록 우리는 민주주의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의도할 수 있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 눈앞의 승리가 아니라 그런 종류의 ‘자치령’이다. 그렇게 해서 지는 싸움은, 지는 싸움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2010년 10월 24일 일요일

이승우_오래된 일기

밖으로 뻗어보려고 하면 안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진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밖에서 당기는 힘 때문에 움찔한다. 그 때문에 긴장이 생긴다는 건 순전한 빈말은 아니겠지만, 그 긴장이 어느 쪽의 지지도 온전하게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생각 역시 순전한 엄살만은 아니겠다.

나는 내 마음의 깊이가 얕고 팔의 길이가 짧은게 불만이다. 팔의 길이에 대한 염두 때문에 마음이 깊어지지 못하고, 마음의 깊이에 대한 우려 때문에 팔을 늘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기도 하는데, 한편으로는 마음의 얕음과 팔의 짦음을 팔의 길이와 마음의 깊이에 대한 신중한 고려 때문인 것처럼 위장하여 스스로를 달래고 있다는 의심도 든다. 그런데도 갈등이 여전한 걸 보면 그 위장 또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것 같다. 여태 이렇다. 빈말해주고 엄살 들어주고 내 서툰 위장에 넘어가는 척해주는 (때로 속은 척하기로 독하게 마음먹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나의 훌륭한, 이타적인 독자들에게 인사한다. 또 넘어가주고, 넘어간 척해주고. 또 빈말해달라. 그러면 나는 또 엄살 부리고 스스로를 달랠 힘을 얻겠다.

2008년 11월
이승우

2010년 10월 20일 수요일

한윤형_뉴라이트 사용후기

26
 한국인들은 고대에 한국이 일본에 문물을 전해줬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 동시에 , 그동안 한국으로부터 문물을 전수받아온 사실을 무마하기 위해 과거에 당나라에 다녀온 견당사따위를 강조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생각한다. 같은 논리를 들이밀자면, 한국에 근대 문물을 전해준 일본의 현격한 공로를 무시하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일인 것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 증오의 대상이었던 일본의 흔적을 지우려는 노력 속에서, 한국이 일본을 통해 거의 모든 것을 배웠다는 사실은 은폐되어야만 했다. 일본인들이 자국어로 '근대' 전체를 번역해놨기 때문에 우리 한국인들은 비교적 배우기 쉬운 일본어만 공부한다면 '근대 세계'에 무임승차할 수 있다는 진실도 잊혀야만 했다. 그러나 과거는 그것이 망각될 때에 현실을 구속하는 법이다. 일본의 영향을 망각하려는 필사적인 시도느 일본의 경험마저 은폐시켰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확장하여 근대의 미개체로 삼으려는 시도를 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영어교육에 매달리게 되었다.

27
영어 몰입교육을 지지하는 중산층의 욕망은 이 강남 아이들을 위해 작동하는 체제를 끝장내고 싶다는 평등주의의 욕망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욕망은 착취의 구조를 더욱 강화한다. 모든이가 영어를 잘하는 세상에 대한 욕망은 실현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추구하면 할 수록 우리는 영어를 못하는 이들이 착취당하는 세상을 만들게 되는거다.

41
수탈을 하기 위해 근대화를 시켜야 했고, 근대화가 되다보니 수탈의 기제가 더 공고해진 것이 식민지기였다.

54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가 얼마나 잔혹했는지를 물으려면 비교가 필수적이다. 어떤 방식으로 비교해볼 수 있을까? 먼저 공간의 축으로 상대화해보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동시대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통치와 비교했을 때 일본의 조선 식민통치가 어땠는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다음으로 시간의 축으로 상대화해보는 것이 가능하다. 일제 식민통치의 전후, 즉 조선 말기의 왕정이나 대한민국 건국 후의 독재정치와 비교해서 일본의 식민통치가 어땠는지를 물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통치의 층위와 전쟁동원의 층위를 구별해서 다른 시기 다른 공간과 견주어보는 분별력도 요구된다.

78
경제성장은 적절한 여건만 갖추어지면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먼저 달성한 선진국의 학자들은 후발주자들의 경제성장에 대해 어떤 특별한 이유를 붙이고 싶어했다. 그 예로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가 있고 유교 자본주의론이 있다.

79
공산주의 국가가 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라는 말도 이 시대에 그리 마음에 와 닿을 소리가 아니다. 공산주의 붕괴이후 자본주의가 승리자의 기분을 만끽하던 때도 벌써 20년 전이다. 설령 사회주의 진영에 속했다 하더라도 소련 붕괴 이후 자본주의를 도입하면서 고속성장을 시작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나는 한국전쟁이라는 극한의 경험응ㄹ 하거나 그 토대 위에서 성장했던 기성세대들이 사회주의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민감한 반응으 이해한다. 하지만 사회주의권이었던, 지금도 어느 정도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과 베트남의 고도성장은 우리의 편견이 어떤 부분에선 현실에서 어긋나 있음을 인정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한윤형_키보드워리어

13
나는 부모에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답답한 성격의 아이였다. 나는 누군가가 내 것을 빼앗아 갈 경우 혹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할 경우, 그것에 대해서 항의하지 않고 주어진 생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마음으로는 그에 대한 신뢰를 지워버리는 식으로 복수를 하는 성격이었다.

33
단지 구호 하나에만 동의하는 이들이 같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나의 구호를 각자의 방식대로 서술해 진열하는 단체 피케팅 정도다. 그렇다면 하나의 문제에 대해 사상이 다른 이들이 연대하려면, 비록 구성원들이 총괄적인 세계관이나 형이상학을 공유하지는 않을지라도, '그 문제에 관련한 세계관'에는 대략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합의를 가능하게 하는것이 대화이며 그런 대화 자체가 바로 운동의 실천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41
이문열이 그랬잖아요? 저 홍위병들, 단체 이름은 수십 개지만 사람은 다 그 사람이 그사람이라고. 전 그말이 맞는 것 같아요. 왜 또 조직을 만들라는 거예요?

68
지성계나 지식인의 권위는 타파되기는 커녕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었다. ....왜 권위가 필요한 것일까?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그런 이들이 자신의 생각이 뭔가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은, 평소에 자신이 좋아하던, 자신에게 권위 있는 누군가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말했을 때이다.

83
..파병반대라는 주장이 맞서야 하는 것은 약소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패배주의다. 설명해야 할 것은 미국의 힘이 무소불위는 아니라는 것. 미국 사회는 다원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하나의 정치적 주장에 대해 한국이 반대하는 것을 미국 자체에 대한 반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것. 그래서 부시에 대한 반대가 국익에 도움이 될지 해가 될지는 알 수 없다는 것, 국제사회에는 미국말고도 신경써야 할 시선이 많으며 그런 이들에 대한 고려 역시 '국익'에 속한다는 것, 한국이란 국가의 역량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니며 그 역량으로 미국과 협상을 하는 것이 외교관의 의무라는 것 등일 것이다. 그러고 이런 설명 속에서, 아마도 전면적인 파병반대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전투병 파병에 한해서 파병을 용인한다 정도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95
지금의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정치적인 대안을 지니고 있지 않고, 사실주의적인 분석은 회의와 냉소의 늪에 빠진다. 하지만 나는 이 늪이 위험하기는 해도 섣부른 희망의 아편만큼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꿈에 취해 살아서는 안 되고, 제정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직시해야 하는 것이다.

155
나는 복잡한건 세상이고 말은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코엘류나 그에게서 감명받는 수많은 사람들은, 복잡한 건 말이고 세상은 단순하다고 믿는다. 세상이 단순하고 말이 복잡하므로, 마땅이 말이 세상만큼 단순해져야 한다는 당위가 생긴다.
나는 군대에 와서 [단순한세상/복잡한말]의 세계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전에도 내가 살아가는 공간 바로 옆에서 살아가고 있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나는 종시 그들을 만나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단순한 세상]엣 어떻게 [복잡한 말]이 도출될 수 있는지를, 나는 똑똑히 보았다. 그것의 원인은 지극히 단순한 사태를 지극히 단순하게 표현하는 데에 실패하고 마는 그들의 빈약한 표현력이었다.
 내가 언제나 몇 개 안되는 단어로 똑같이 푠현하는 하나의 사건을, 그들은 수십가지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다. 말이 그런 식으로 복잡해질 때에, 나는 말에 집중하지 않고 저 말의 발화자가 이전에 시킨 짓을 떠올리며 그의 말을 해석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토록 단순한 사건을, 맥락을 통해 파악해야 했을 때의그 홛당한 기분이란. 그런 활동에 익숙해져 있는 그드에게, 내가 뭔가 복잡한 것을 말할 때에, 그것 역시 그저 단순한 것을 잘못되게 표현한 것일 뿐이라는 추정은 정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들에게 아무 것도 전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157
나는 무언가를 바꾸겠다고 글을 썼지. 하지만 결국에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같이 술을 마실 친구들만 찾았군. 그렇다면 내 글쓰기의 목적은 기껏해야 '친구 찾기'였어, 제기랄.

169
운동권이 주류였던 시절엔 조직에 참여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머리 싸매고 공부만 하는 이들을 사회부적응자라고 놀렸겠지만, 오늘날의 현실은 정반대다. 내 주변의 20대 좌파들은, 정말 사교성이 없다. 사교성이 없어서 좌파가 된 건지 좌파질을 하다 보니까 사교성이 사라진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올해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그러한 조류는 운동권 바깥에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젊은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는 거다. 내가 그들에게서 발견했던 것은 일종의 우울증이었다. 동년배에게서 공통의 화제를 찾거나 지적 자극을 받는 일을 포기한 그들은 각자의 환경에서 원자화되어 그러부터 파생되는 우울함의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고 있었다.

170
386세대들은 뭔가 자기들끼리만 이해할 수 잇는 공통된 헛소리를 지껄인다. 하지만 우리 20대들은 각자의 헛소리를 지껄인다. 우리들도 서로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171
한국사회는 세대문제를 제기할 정도로 다른 문제를 해결한 사회가 아니다. 20대 문제라는 것을 보면 볼수록, 가령 주거 문제, 교육 문제, 실업 문제, 비정규직 문제등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이것들은 제각각 20대를 넘어서는 폭넓은 대상을 포괄한느 문제가 되어 버린다.
 유럽의 청년들이 천유로세대 급기야 지금은 700유로세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유럽사회가 대부분의 소수자들에 대해 어느 정도의 사회복지를 끝낸 상태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층의 기대소득이 그들 부모에 비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청년들에게 불만으로 누적이 되고 사회적으로도 심각하게 다가올 수 잇는 것이다. 그들 사회에서 20대는 가장 소외된 이들일 수 있다.

171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자살률이 1위인 나라다. 곳곳에 죽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지금 이 순간은 대부분 부모의 자산이나 축내며 취업준비 중인 젊은이들의 처지가 얼마나 눈에 들어오겠는가? 다만 할 수 있는 예기는 그들의 고난은 소수자의 고난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미래 세대 전체의 고난이며, 살실 그들의 고난 때문에 현재의 기성세대도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는 얘기 정도일 것이다.

173
비정규직 대부분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고졸과 대졸의 임금 격차는 벌어지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쪽쪽 빨아먹어 가며 생산성을 높이는 이런 기업 생태계에선, 일단 안 좋은 직장에 뛰어들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그럭저럭 살 수 있을거라는 말조차 거짓말이 된다. 첫 직장은 당신의 평생을 결정한다. 각 가정의 부모들이 그네들의 자녀를 함부로 취업현장에 내보내지 않고 어덯게든 더 뒷바라지를 해주려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회에서 어째서 어른들은 눈높이를 낮추라는 충고를 하는걸까?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걸까?

176
문제는 그러한 인식에 숨어 있는 순진함이고, 그 순진함이 사태를 개선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진실이다.

177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의 대학생들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을 서사화 할때에 세상도 사회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서사화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말하는 연습을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182
어슐러 르 귄 <어스시의 마법사>
아이 적엔 마버사가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인 양 여겨졌겠지. 나도 한때는 그랬단다. 우리 모두 다 그래. 하지만 진실은 진정한 힘이 커지고 지식이 넓어질수록 갈 수 있는 길은 점점 좁아진다는 것이다. 끝내는 선택이란게 아예 없어지고 오직 해야할 일만이 남게 된단다.

182
축제의 시간은 끝났고, 의무만이 남았다.

2010년 10월 19일 화요일

이승우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두번째 사랑이 첫번째 사랑보다 쉬운 것은 아니다. 세번째 사랑이 두번째 사랑보다 안전한 것도 아니다. 사랑은 언제나 어렵고 늘 불안한 것. 사랑은 여간해서는 숙달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이 뜀틀을 넘거나 철봉에 매달리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뜀틀은 거기 늘 같은 모양으로 있고 철봉도 그 자리에 있다. 두번째 넘기를 하는 뜀틀은 첫번째 넘기를 했던 그 뜀틀이다. 세번째 매달리는 철봉은 두번째 매달렸던 그 철봉이다, 뜀틀이나 철봉에 대한 두번째 세번째 도전은 이를테면 반복이다. 반복은 숙달에 이르는 과정이다. 두번째 넘을 때가 첫번째보다 조금 쉽다. 세번째 매달릴 때가 두번째보다 약간은 안전하다. 그러나 사랑은 반복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인 그, 또는 그녀는, 늘 같은 모양으로 그 자리에 있지 않다. 두번째 사랑의 대상인 그, 또는 그녀는 첫번째 살ㅇ의 대상이었던 그, 또는 그녀가 아니고, 세번째 사랑의 대상인 그, 또는 그녀는 두번째 사랑의 대상이었던 그, 또는 그녀가 아니다. 그, 또는 그녀가 전혀 새로운 그, 또는 그녀이므로 반복이 아니고, 반복이 아니므로 숙달도 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은 매번 처음 하는 것처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두번째 소설이 첫번째 소설보다 쓰기가 쉬운 것도 아니다. 세번째 소설이 두번째 소설보다 반드시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다. 소설 역시 사랑이 그런 것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사랑이 그런 것처럼, 소설의 대상도 늘 새롭고, 그러므로 반복이 아니고, 반복이 아니므로 익숙해지지도 않는다. 매번 처음 쓰는 것처럼 소설을 쓸 수 밖에 없다.

그, 또는 그녀에 대해 빠삭하게 아는 사람이 사랑을 할 리 없고, 세상에 대해, 혹은 사람의 삶에 대한 부동의 대답을 갖고 있는 사람이 소설을 쓸 리가 없다. 사랑도 그렇지만, 소설 쓰기는 근원적으로 미지의 세계에 대하나 열망이고 무리로부터 위탁받은 열정이다.

  밀란 쿤데라는 최근의 한 소설에서 향수에 대해 말한다. 그에 의하면, 향수란 어원적으로 무지의 상태에서 비롯된 고통이다. 귀환해야 할 대상에 대해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 예컨데 내 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것, 그서이 향수라는 것, 소실이란, 그런 점에서 향수이고, 소설가들은 향수병에 걸린 자들이다. 귀환해야 할, 그러나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소설을 쓰게 한다. 귀환해야 할 세계가 없거나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귀환해야 할 세계에 대해 모르는게 없는 (모르는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고통도 없고, 향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당연히 소설을 쓰지 않는다. 의식하는 자만이 아프다. 향수가 없으면 소설도 없다.

 그런 점에서 소설 쓰기는 도무지 형체가 잡히지 않는 세상살이에 대한 서툰 허우적거림이거나 임의적인 가설같은 것인지 모른다. 답을 알고 있는 사람 (익숙해진 사람)이 소설을 쓸 까닭이 없는 이치이다. 튼튼한 집을 이미 지어 가진 사람이 가설의 필요를 느낄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소설은 매번 새로 하는 질문이고 도달한다는 보장이 없는 낯선 길에 대한 추구다. 해답을 발견하는 순간, 문득 길이 낯익어지고 마침내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지점에서 소설은 끝난다. 더 이상 미지가 아니므로 길을 갈 필요가 없고, 미지가 아니므로 열정은 사라진다.

 미지가 아닌데도 가고 향수가 없는데도 쓸 수는 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냉장고 문을 열고 눈도 뜨지 못한 채 주스병을 집어들고 마시는 사람이 있다. 술 취한 김유신을 태운 애마는 생각 없이 천관녀의 집으로 갔다. 습관의 힘이다. 의식의 도움 없이 근육이 저절로 움직이는 상태, 늘 가던 길, 익숙한 길을 의식하지 않고 그냥 가게 하는 힘. 그렇게 글을 쓸 수는 있다. 길들여진 근육으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할 수는 있다. 근육은 튼튼하고 습관은 질기다.

 길들여진 근육, 질긴 습관의 자연스러움으로 써내려간 소설, 그런 소설이 문학을 시궁창에 집어넣는다. 문학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시궁창은 실은 문학의 웅덩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시대도 아니고 자본이나 권력도 아니고 정보나 극장도 아니고 독자도 물론 아니다. 숙달된 사랑에 의해 사랑은 익사하고, 익숙하게 씌어지는 소설로 하여 소설은 절명한다.

 습관의 힘을 경계할 것! 소설을 쓰기 시작한지 벌써 20년, 그런데도 여전히 서틀기만 한 내 소설의 가난한 육체 앞에, 그런데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종종 받게 되는 그 습관의 힘에 이끌린 자동적인 글쓰기의 유혹 앞에, 마치 신년 벽두에 마음 잡아먹고 '금연'이라는 글씨를 크게 써 붙이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2001년 3월
이승우

이승우_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 03

66
사랑은 다른 차원에서 온다. 앎을 사랑의 조건으로 내세울 때 사랑은 인간의 역사가 되고 자유의지의 산물이 된다. 그러나 사랑을 앎의 조건으로부터 분리시킬 때 사랑은 초월적인 근거를 확보한다. 이른바 운명의 영역. 다른 차원.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어찌할 수 없다'의 세계. 사랑은 앎을 전제로 하지 않고, 앎의 결실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는 있다. 앎이 그 사람을 사랑하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그 사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사랑이 알게 하는 앎은 사랑의 조건으로 제시도는 앎과 같은 성격이 아니다. 사랑의 조건으로 제시되는 앎은 양과 부피의 앎, 즉 정보딩다. 여기서는 무엇을 얼마나 아느냐 하는 성격이 있다. 그러나 사랑이 알게하는 앎은 정보가 아니라 이해이다. 양이나 부피가 아니라 깊이이다. 세목들이 아니라 핵심, 순간이면서 영원인 어떤 포착이다.

68
우리가 길을 걷는 다는 것은 그 길 위에 기억을 쌓는 일이면서 동시에 그 전에 그 길을 걸어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쌓인 기억들을 밟고 가는 일이기도 하다. 걸을 때, 특히 두 사람이 어깨를 마주하고 몸을 스치듯 나란히 걸을 때 몸의 안쪽으로 표나지 않게 스미는 따뜻하고 편안한 기운은 그 길, 길이 간직한 기억들로부터 온다. 걷기만 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두 사람이 만나 무슨 일을 하든 완전한 만족감을 얻기 어렵다. 그래서 자꾸만 무언가 다른 일을 궁리한다. 그러나 사심 없이 느리게 걷는 산책은 그것 자체로 완전히 충족적이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72
미쳤다는 것은, 미쳤음을 자각하고 시인하는 것은, 그 미친 상태에 머물러 있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해야 옳다. 그런 점에서 미쳤으면서 미치지 않았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치명적이라는 것은 운명의 표정이다.

95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우리가 모르는 것을 제외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알게 한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군가가 알게 한 것들만 아는 겁니다. 당연히 불완전하지요.

103
간절함과 절실함이 구체를 얻지 못하고 내면화 될 때 안타까움이 되지요. 열망하지만 열망을 펼쳐내지는 못해요. 열망을 현실화하려고 하는 순간 당신들은 이상한 거북함에 시달려요. 일종의 자기혐오.

143
책을 읽으려고 과자를 찾았는지 과자가 생기면 그것을 먹기 위해 책을 집어들었는지 모르겠다.

148
내가 누군가를 향해 사랑을 품을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또는 그녀가 가진 사랑받을 만한 조건이 다른 사람의 사랑도 불러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아니, 자연스럽게 나의 기준이 보편이 된다. 다른 사람도 똑같이 원하는 사람을 내가 얻었다는 생각만큼 자긍심을 주는 것도 없다.
 그런데 그 자긍심이 나를 할퀴는 쪽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역설적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러므로 나에게만 소속되어야 하고, 내가 독점해야 하는 그, 또는 그녀 곁에는 언제나 그, 또는 그녀에게 호감을 표시하거나 연모하거나 심지어는 숭배하는 사람이 있다.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럴 만하니까. 누구나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것으르 어떻게 용납한단 말인가. 그, 또는 그녀 곁에 있는 모든 것이 질투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149
사랑받을 만한 조건은 동시에 사랑할 능력이기도 한 것. 그 조건과 능력이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불신을 생산한다. 나는 그, 또는 그녀를 믿으 수 없다. 애인이야말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가장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150
보고싶다로 표현된 감정의 진짜 정체는 믿을 수 없다 이다. 왜 보고 싶은가.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 곁에 없으면 불안하기 때문에. 그, 또는 그녀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그, 또는 그녀가 나에게 소속되어 있다는 믿음이 희석되어 가니까. 내 곁으로 부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가 '보고싶다'는 포면에 부드럽게 당의정이 처리된 소환 명령인 것이다.

151
상상 속의 그림은 훨씬 세밀하고 더 구체적이고, 무엇보다도 집요하다. 그리고 질투는 그 부근에서 태어나고 활동한다. 하나의 이미지는 원근의 감각을 잃고 비정상적으로 확대된다. 질투란 실상 이미지의 집요한 공세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의 감정을 황폐화시키고 균형 감각을 빼앗아 광기 속으로 몰아 넣는다. 가령 그런 경우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다.

153
질투는 상상을 통해 이미지를 확산하고, 상상을 통해 확산된 이미지는 다시 질투를 심화시키는 순환 작용이 되풀이되었다.

166
합리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권력을 잡은 정권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종교나 철학의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와 형식적으로는 닮아 있다.

이승우_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 02

44
우리는 일반적으로 타인을 필요 이상으로 깊이 알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앎이야말로 아주 바람직하다. 예컨대 명함을 건네는 정도로 충분한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거나 전부여야 하는 관계가 있지 않은가.

58
그동안 견지해 오던 마음의 평화는 이미 부서져가고 있었다. 만일 누군갈ㄹ 사랑한다면 불안과 괴로움을 감내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스스로엑 물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평화와 안정을 반납하고 불안과 혼란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 일이 현명한 것일까. 질문은 이성적으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답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질문을 하는 나는 생각을 하는 자였다. 그러나 대답을 하는 나는 생각으 할 줄 모르는 자였다. 질문은 침묵 속으로 스며들고 침묵의 독소에 쏘여 흐물흐물 형체를 잃었다. '어찌할 수 없다가' 언제나 할 수 있다는 이긴다. '할 수 있다'가 자유의지라는 깃발로부터 나온 구호라면 '어찌할 수 없다'는 운명론이 불러낸 고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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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론자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내세울 일도 숨길 일도 아니다. 그것은 대개 상황의 역사이다. 예를 들면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특히 예기치 않은 사랑에 빠져든 사람에게 그 사랑은 거의 백 퍼센트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지고서 운명론자가 안된 사람이 없고 운명론자가 안 되고서 사랑에 빠진 사람이 없다. 말하자면 빠진다는 것은 운명의 행보다. 늪이거나 물, 혹은 사랑. 늪이거나 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빠지는 것처럼 사랑에 빠진다. 들어가는 것은 주체의 역사고 빠지는 것은 상황의 역사다. 사랑 속으로 들어간 사람은 혹시 몰라도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사랑을 운명으로 인식하지 않을 방도가 없다. 사랑 속으로 들어갔다고 말하는 사람은 혹시 몰라도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다 운명론자다.

현재 진행 중인 고통이 언제나 가장 참기 어려운 것처럼 현재 진행 중인 사랑이 언제나 가장 크고 절실하고 진실하고 유일하다는 것, 현재의 낮은 산이 과거의 모든 높은 산을 가린다는 것, 그것이 시간의 원근법이라는 것. 그러나 안다는 거은 주체 밖의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다. 앎의 대상은 바깥의 세계이다. 운명을 예감하고 있는 사람에게 지식은 전혀 영향으 미치지 않거나 아주 조금밖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승우_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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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사랑을 하는 사람들, 누구의 이해도 구할 수 없는 사람들, 사랑하는 것이 너무 힘들지만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에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기로 작정한 것이 아니라, 예컨대 자발적인 의지의 작용으로 사랑에 나선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문득 사랑에 붙들려 이게 뭐지, 내가 왜 이러지, 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 어쩔 줄 몰라하며 끌리는 사라믇ㄹ, 그렇지만 어떤 지원도 누구의 보호도 요청할 수 없는 사람들, 다만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 현실에 없는 현실에 없으니까, 현실에 없음을 의심하지 못하니까 스스로의 몸으로 현실 밖으로 길을 내야 하는 사람들, 그 길만이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다른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 마음을 따라 몸을 옮기지 모하는 사람들, 열정은 뜨겁지만 착한 사람들, 혹은 어리석은 사람들, 여전히 아직도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나는 땅속으로 나 있는 길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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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사람은 반기지만 오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관심한 것이 전단지의 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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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니다. 몇 개의 사실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 몇개의 사실들은 진실을 포섭하지 못한다. 때때로 우리는 진실을 감추기 위해 여러 개의 사실들을 늘어 놓는다. 사실들을 나열함으로써 진실을 엄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다른 사실 속에 내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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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의하고 생기없는 박수 소리야말로 수상자의 머리에 뒤집어씌우는 똥이라고 할 만하다..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어차피 문학상을 비롯하여 이 땅의 모든 상은 우연한 행운이거나 우연한 액운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 문맥에서 행운과 액운은 이음동의어이다. 어쨌든 그는 뽑힌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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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은밀함은 동시에 매혹이기도 하다. 은밀한 것들은 두려움과 유혹을 같이 제공한다. 피하고 싶지만 또한 접촉하고 싶다. 피하고 싶은 마음이 뒷걸음을 치게 하고 접촉하고 싶은 욕망이 몸을 앞으로 내밀게 한다. 이 부분에서 머뭇거림은 불가피한 현상이 된다. 우리는 두려워하면서 끌린다. 혹은 끌리면서 두려워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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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먼저,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부터 하자면, 그녀는 매우 특별한 여자다. 뭐가 특별하냐고? 그렇게 묻는 것은 좀 도발적이지 않은가. 아니면 눈치가 없거나. 정당한 질문은 '뭐가'가 아니라 '누구에게'이다. 그리고 그 답은 '나에게이다. 사랑의 열정에 빠져있는 모든 사람에게 그를 그곳에 빠뜨린 사람은 예외 없이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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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같아야 동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결정적인 한 가지면 충분하다. 아흔아홉이 같아도 그 한가지가 없으면 불가하고, 아흔아홉이 달라도 그 한 가지가 같으면 가능하다. 그것이 호감을 느끼는 메커니즘의 신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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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론은 종종 사랑의 불가항력적인 성격을 부각시킴으로써 사랑의 중요한 동력인 개인의 욕망과 선택을 가린다. 운명적인 사랑이 운위되는 자리에서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는 문장은 불순하거나 부정확한 것으로 판명된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문장이 올바른 유일한 문장이 된다. 나도 그랬지만, 사랑에 빠져 들어가는 순간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운명론자의 영혼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랑을 평가와 판결의 영역에서 제외시킨다. 이제 사랑은,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되고, 내가 찾아간 것이 아니라 그것이 찾아온 것이 되고,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는 면책의 특권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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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해 너무 익숙하고 자신만만한 요즘 사람들의 반질반질하고 당당한 표정에 좀 질려 있어서 그랬는지, 마치 세상을 처음 대하는 것처럼 낯설어 하며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꽤 매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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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겹침으로써 사랑의 감정을 증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