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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을 완성하는 것은 비밀이다. 연정과 비밀은 된장과 미생물의 관계와 같다. 비밀이라는 균은 연정을 발효시킨다. 비밀이 발효시킨 연정은 서서히 냄새를 풍기며 익어간다. 아슬아슬하다. 비밀이 넘 과하면 연정은 부패되고 그리하여 끝내는 악취를 풍긴다. 그때쯤되면 모두가 그것을 향해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그러나 적당하기만 하다면 연애를 신비롭고 짜릿하게 만들어준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결혼은 연애의 결말이라기보다 전혀 다른 어떤 것일 가능성이 크다. 결혼은 연애에서 비밀이라는 위험요소를 제거한 무균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로미오는 담을 넘어 들어간 줄리엣의 베란다에서 둘만의 비밀을 만들었지만 21세기의 비밀은 가로 45, 세로 18센티미터의 키보드 위에서 생성되고 있었다. 잔잔한 수면 위, 메인 창에서 퀴즈와 힌트, 정답과 오답이 평화롭게 오가는 사이, 우리들의 밀어는 그 아래 작은 창, 수면 아래에서 맹렬히 서로에게 입맞추고 있었다. 비록 우리의 입과 입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말과 말은 가까이 있었다. 그것들은 노골적으로 키스하고 애무하고 상대방의 육체에 자신의 육체를 섞어놓고 있었다. 언어로 나누는 사랑. 어느 누가 이것을 가짜라 폄하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런 자가 눈앞에 있다면 나는 말해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진짜 사랑은 언어로 나누는 것이라고. 트리스탄이 죽은 것은 이졸데보다 깃발이 먼저, 아니 그 깃발보다 앞서 질투심에 사로잡힌 아내의 거짓말, 흰 깃발을 검은 깃발이라고 말한 그 언어가 먼저 당도했기 때문이다. 트리스탄을 죽인 것은 독약이 아니라 그에게 전해진 사랑하는 사람의 말, 신호 혹은 전언이었다.
록산느를 사로잡은 것 역시 시라노가 아니라 그의 편지였고, 시라노가 사랑하는 것 역시 록산느가 아니라 록산느가 읽고 있을 자신의 시였을 것이다. 채팅을 하며 우리는 우리의 말과 사랑에 빠진다. 우리의 말, 우리를 대신하여 화면 위로 떠오른 문장들. 그 문장이 불러온 또다른 문장. 나의 문장은 너의 문장과 만나 그 다음 문장을 불러온 또다른 문장. 나의 문장은 너의 문장과 만나 그 다음 문장을 만들어내고 그 문장은 다시 예기치 않은 새로운 문장으로 몸을 바꾼다. 아, 내 몸을 떠나 생명을 얻은 저 말들, 또 그 말과 말들의 사랑. 그것은 육신의 사랑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는 것이고, 허무를 남기지 않는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자친구의 문자메시지를 지우지 않는 친구가 있었다. 문자는 그녀의 죽음에 앞서 독착했고 그녀가 화장장의 재로 사라진 후에도 친구의 휴대폰 메모리 안에 남아있다. 그는 언젠가 나에게 그 문자를 보여주었다. "집에 들어가면 전화 좀 해." 어찌 보면 별 의미 없는, 평범하고 딱딱한 문자에 불과할 수도 있었지만 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날 녀석은 그녀의 문자를 씹었던 것이다. 특별한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술을 좀 많이 마셨을 뿐이었다. 그는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잠자리에 들었고 그녀는 자기가 살던 아파트 현관을 나와 계단으로 두층을 더 걸어올라가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전화 한번 안했다고 그런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테지만 어쨌든 일은 그렇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친구는 그녀의 사진 대신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낸 그 문자를 지니고 다닌다. 휴대폰은 묘비이고 그녀의 마지막 문자가 묘비명인 셈이다. 그과 그녀사이는 크게 달라진 게 없을지도 모른다. 그는 휴대폰을 열어 문자를 보고 가끔 '답장' 메뉴를 눌러, 받을 사람 없는 문자를 쳐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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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도서관에서 본 어느 잡지에 이런 칼럼이 있었다. 칼럼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만약 안나 카레니나에게 휴대폰이 있었다면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졌을까? 우론스키가 문자만 보냈어도 안나는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고 오해도 쉽게 풀렸을 거라는게 필자의 주장이었다. 만약 춘향과 이몽룡이 휴대폰을 갖고 있었다면 춘향은 몽룡의 장원급제 사실을 당장 알았을 테고 몽룡도 남원의 새 사또가 변태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한양 잘 도착한 거야? 근데 새로 온 사또 졸라 변태야. 날더러 점고에 나오라니 미친 거 아냐?"
이런 문자가 오갔을 게 아닌가. 그러나 그 당시엔 휴대폰같은 것은 당연히 없었고 편지는 인편으로 일주일이 넘게 걸리는데다가 그나마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집 밖에만 나가도 하루 종일 연락두절이고 조금만 멀리 여행을 떠나도 몇년 후를 기약해야 했다. 아마 지금이라면 로미오늬 추방도 서로에게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고 두 연인은 죽음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시절이었으니 모든 연애가 애절하고 사소한 오해도 치명적일 수 밖에.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휴대폰과 메신저, 이메일과 블로그 그리고 GPS가 있다. 우리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알고 있고,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남이 알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혹시 모르는 경우에도 통화버튼 하나만 누르면 바로 해결된다. 배터리의 성능은 점점 좋아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여간해선 휴대폰을 놓고 다니지 않는다. 어쩌다휴대폰이 꺼졌을 때 온 문자메시지나 전화도 전원을 켜는 순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부가서비스가 점점 보편화되고 있어 이제 연락두절에 대한 핑계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문득 요즘 TV에 왜 사극바람이 부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현대극 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니까 사극을 만드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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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지극한 행복의 순간에도 인간의 상상력은 어느새 최악의 파국에 가 닿는다. 내게 찾아온 이 행복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에서부터 혹시 이 모든 것이 누군가가 꾸민,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려 가장 극심한 고통을 맛보게 하려는 사악한 계략이라 새각하는 편집증까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비록 그 싹은 아직 크지 않을지라도, 마음속 깊숙한 어딘가에서 처천히 자라나고 있었다.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믿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그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 역시 의심스러웠다. 무엇보다도 그날 내가 느낀 열락감, 그 지고의 행복감이 나의 노력과는 무관한 일종의 행운이라는 것도 그런 심사를 부추겼을 것이다. 사랑이 어찌 노력과 재능으로 되랴? 그것은 정말 운명이거나 우연인 것이다. 정말 딜레마이다. 사랑의 기쁨은 그 예기치 않음에서 오는데, 정작 그 예기치 않음 때문에 인간은 불안에 떨며 그것이 제 손아귀를 빠져나갈까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상대방을 만나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함께 최고의 기쁨을 누린다 해도 그것은 사업의 성공이나 고시 합격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의 것이다. 두 연인이 쟁취한 사랑의 승리는 오직 그들만의 것이므로 그야말로 배타적인것이며 그 때문에 언제나 위태로워진다. 증명서도 공인된 형식도 없다. 그날 코엑스에서 우리를 스쳐 지나간 수만 명의 사람들중 누구도 우리 기쁨의 증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은 마치 날달걀을 던지며 노는 어린 아이들처럼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아주 작은 일에도 그들의 기쁨은 휘발되고 날카로운 고통이 그들을 지배하게 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래서 사람들은 결혼을 하는걸까? 증인을 세우고 공인된 형식을 만들어 자신들끼리만 간직하던 그 짧고 황홀하고 위태로운 기쁨을 진부하고 안락하고 견고한 제도로 바꾸어버리는 것일까? 마치 믿을 수 없이 많은 돈을 딴 도박사가 카지노의 칩을 현금으로 바꾸어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추방된 젊음, 디오게네스의 윤리. 복도훈==
IMF체제 이후,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놓은 소수독과점의 경제구조, 양극화현상, 비정규직의 전면화 등 '삶의 자본화' 또는 '삶의 생존전략화'라고 총칭할 수 잇는 이 시대의 젊음의 고단한 세상살이에 대한 김여아식의 답변이자 뛰어난 성장소설인 퀴즈쇼에서형상화된 젊음에게 모험이라 그 답의 정오에 따라 생존의 당락이 결정되는 퀴즈쇼로, 자기 형성의 교양은 퀴즈쇼를 위해 마련된 무질서하고도 단편적인 정보의 집적으로 코드화된다. 그리고 그 동안 잘난척하며 편협하기만 했던 기성세대는 자기 폐쇄적인 세계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이들 젊은이들에게 경멸적 어조를 담아 '오타쿠' 등으로 부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제 김영하의 퀴즈쇼와 함께 독자들은, 좀처럼 그 희망을 찾아보기 힘든 이 시대의 백수, 신빈곤계급의 일원인 한 젊은이가 세상에 대해 조용히 '사보타주'하는 광경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헌책방 아르바이트생 이민수, 야전침대가 유일한 재산인 디오게네스의 새로운 후예에게 부디 앞날의 행운이 함께하기를! 청춘의 찬란한 빛이 언제나 그대들과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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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의 선택으로도 배제되고 탈락되어 거의 변화 불가능한 운명의수준으로 굳어져가는 당대 현실에 대한 뼈아프도록 일그러진 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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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생존이 삶의 유일한 지상목표가 되고 '잘 먹고 잘 사는 법'으로 대표되는 웰빙이 문화 트렌드로 자리잡은 살벌한 적자생존의 현실과 그 맞은편에 놓인, 무기력과 의기소침이 만성화된 이 시대에 사랑, 고단한 세상살이를 그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과연 이 시대에 젊음은 어떤 형상으로 나타나며, 또 그들의 성장은 어떻게 이야기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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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할머니의 죽음 이후, 모든 것을 하나하나 되묻는 습성을 갖게 되다. 그것은 어떤 세계에 들어가 그 일원이 되는 방식, 즉 대답이 주어지면 다시는 되묻지 않는 순응적인 삶의 방식을 스스로 거부하는 일이며, "어린 남자가 세상에 맞서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사보타주"(98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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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이십대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가장 아름다운 자들이 가장 불행하다는 역설. 그들은 비극을 살면서도 희극인 줄 알고 희극을 연기하면서도 비극이라고 믿는다. 이십대 혹은 이십대적 삶에 대한 내 연민이 이 소설을 시작하게 된 최초의 동기라면 동기였다.
굳이 말하자면 이 소설은 컴퓨터 네트워크 시대의 성장담이고 연애소설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십대에 PC통신을 경험했고 거기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어쩌면 나는 익명의 인간과 인간이 실시간으로 대화하며 친구와 연인으로 발전해갈 수 있음을 알게 된 첫 세대일지도 모른다.
온라인은 언제나 부당하게 폄하돼왔다. 그것은 일회성의, 익명의, 무책임한 그리고 심지어는 부도덕한 공간으로 치부되었다. 뭐, 전혀 터무니 없는 얘기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나를 비롯한 새로운 세대는 바로 그 '쓰레기' 위에서 자라났다. 우리는 거기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연애를 하고 논쟁을 벌였다. 모임을 조직하고 경쟁자를 질투하고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채팅을 했다.
2011년 9월 5일 월요일
퀴즈쇼 01_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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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주가 흘러갔다. 거의 중독되다시피 퀴즈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어느새 나 역시 그 문화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익숙해졌다는 건 얼마간은 지루해졌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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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녀는 명쾌하고 산뜻한 문제를 냈다. 한마디로 ‘아름답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문제였다. '아니, 아름다운 문제란게 도대체 어떤거야?'라고 물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꽃집에서 갓 사들고 나온 프리지어처럼, "자, 보라구, 얼마나 예쁜지!" 식으로 한방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위치한 미묘한 맥락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낸 문제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폐쇄된 퀴즈방의 숨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수다한 허접스러운 문제들 속에서 그 진가는 드러난다. 홀연 스스로 빛을 내며 다른 문제들을 조용히 압도하는 그런 종류의 문제인 것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벽 속의 요정'이 내는 문제는 답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힌트가 교묘했다. 우리는 커피나무 열매를 따먹고 취한 에티오피아 고원의 염소떼처럼 그녀의 힌트를 따라 즐거이 방황하였다. 그것은 영원히 예술로 인정받지 못할 예술이자 마지막 한 사람이 채팅방을 떠나면 흔적없이 사라져버릴 작품이었다. 나는 삿포로의 공원에 눈으로 만리장성을 만들고 밀물 전의 모래톱에 비너스 상을 부조하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런 찰나의 예술이 존재할 이유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나는 퀴즈방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녀가 퀴즈방에 들어오면 가라앉았던 분위기는 새롭게 들떴고 참가자들은 자세를 고쳐앉았다. 문제와 답 사이에는 즐거운 긴장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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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눈이 멀면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 사마실 수 없다네
왜요?
자네도 요즘 젊은이 같구만. 생각도 하기 전에 질문부터 하고 있잖아
그게 어때서요?
우선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하거든. 그리고 틀리더라도 일단 자기 답을 준비해둬야 하는 거야
왜요?
그는 오른 손으로 머리를 긁었다.
세상이 그런 젊은이를 좋아하니까. 세상은 질문하는 젊은이를 좋아하지 않아. 자기 대답을 갖고 있는 젊은이를 원하지
질문을 잘하는게 중요하다고 배었는데요
그럼 그렇게 생각하고 살게
하여간 모르겠어요 왜 커피를 못 사드시는데요?
주인들이 구걸하러 온 줄 알고 천원짜리를 쥐여주거나 아니면 그냥 내쫓아버리거든. 햇볕 따땃하게 드는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하는게 사는 낙인데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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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유만주란 양반이 있었는데 이런 글을 남기셨지. 들어보게. '저택에 사치를 부리면 귀신이 엿보고, 먹고 마시는데 사치를 부리면 신체에 해를 끼치며, 그릇이나 의복에 사치를 부리면 고아한 품위를 망가뜨린다.
그럼 돈은 벌어서 어디다 써요?
끝까지 들어보게. 뒤가 근사해. '오로지 문방도구에 사치를 부리는 것만은 호사를 부리면 부릴수록 고아하다. 귀신도 너그러이 눈감아줄 일이요, 신체도 편안하고 깨끗하다.' 이런 말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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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11 아리스토텔레스 좋은것은 세가지 유익, 감동, 재미/사상과윤리 첫시간
"이야, 순 오래된 책들이네."
꼭 그렇지는 않았다. 개중에는 내가 용돈을 아껴 산 책들도 많았다. 대학교 교재들이야 하나도 아깝지 않았지만 한때나마 내게 감동을 줬던 소설들은 정말 아까웠다. 그리스 수사학자들은 이렇게 가르쳤다고 한다. 연설을 할 때는 감동을 주든가 아니면 지식을 줘라. 그것도 안되면 즐겁게라도 해줘라. 나는 그 책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거나 새로운 것을 배웠고 때론 유쾌하게 웃으며 방바닥을 굴렀다. 그런 책들이 이제 내 곁을 떠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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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나는 어느새 그런 울적한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었다. 인간은 왜 사는 걸까? 산다는 것에 뭔가 의미는 있는 걸까? 자벌레처럼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 기어가다가 알을 까고는 죽어버리는 걸까? 질문을 던지면 던질수록 인생은 더 오리무중이 되어 저 멀리 달아났다.
나는 많은 시간을 누워서 보냈다. 고시원에서는 누워 있는 게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가만히 누워서 마포도서관에서 빌려온 소설을 읽거나 잠을 잤다. 그것도 지겨워지면 책상에 앉아 내게 남은 유일한 창을 열었다. 그것은 물론 빌 게잋의 창이었다. 그 창으로 알바 자리도 찾고 이런 저런 것들을 알아볼 생각이었지만 어느새 나는 즐겨찾기에서 퀴즈방 페이지를 누르고 있었다. 아, 이래서는 안 되지. 나는 '퀴즈방'이 있는 채팅사이트를 즐겨찾기 메뉴에서 지웠다. 그리고 뭔가 진지한 일을 해볼 생각이었지만 어느새 각종 연예계 정보를 훑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터넷은 미로와도 같다. 처음에는 어떤 목적이 있어서 들어오지만 포털의 뉴스에 한번 낚이면 그 목적도 잊어버리고 허접스러운 뉴스의 미로를 헤매게 된다.
나는 익스플로러의 옵션에서 홈페이지를 '빈 페이지'로 설정했다. 그리고 컴퓨터 옆에 수첩을 갖다놓고 인터넷 사용일지를 적기로 했다. 그래야 인터넷에 접속한 애초의 목적을 잊지 않을 것 같았다. 말하자면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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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제대하고 사회로 돌아왔을 때, 가장 피곤했던 것은 선택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군대는 식단이 하나였다.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있으면 차례대로 밥과 반찬을 준다. 하루의 일과는 내가 정하는게 아니라 육군본부와 사단 같은, 나로서는 감도 오지 않는 높은 곳에서 정한다. 아무것도 선택할 필요가 없다. 군대에서는 아무도 "이일병, 너라면 이 두 가지 일 중에서 뭘 할래? 골라봐" 같은 얘기도 "이일병, 너라면 이 두 가지 일 중에서 뭘 할래? 골라봐" 같은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냥 정해진 일을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회로 돌아오자 세상은 선택할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딜 좀 가려고 해도 먼저 버스냐 지하철이냐를 결정해야 했다. 베스킨라빈스든 스타벅스든 계산대 앞에서는 늘 뭔가를 골라야 한다. 부라보콘이냐 월드콘이냐만 결정하면 됐던 시절은 가버린 것이다. 마술사들은 앞에 있는 관객에게 카드를 고르게 함으로써 속임수를 감춘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는 쉽게 믿어버리고 심지어 책임까지 지려고 하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인간은 늘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속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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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에는 원래 좋은 자리라는 게 많지가 않아. 좋은 게 흔할 리 없잖아?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손님들이 자리에 불만을 갖고 있는 셈이지. 그런데 손님들이 자리를 고르면 말이야, 결국 그 자리에 앉자고 주장한 사람이 그 원망을 뒤집어쓰게 되는 거야. 그러나 레스토랑측에서 정해서 앉혀주면 적어도 자기들끼리 자리 가지고 원망하지는 않아. 원망을 하더라도 레스토랑 쪽을 비난하겠지. 그리고 말이야, 의외로 선택을 내리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더라구. 차라리 누가 대신 정해줬으면 하고 바란단 말이야. 그러니까, 들어오는 손님보고 아무데나 편한 데 앉으라고 하는 건 친절이 아니라 불친절인 거야. 그런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옷을 멋지게 차려입은 권위있는 지배인이 자리를 정해서 앉혀주는 거야. 권위적인 명령도 때로는 친절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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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가 모텔에서 전화했는데 나오라고 대답한 상황)
전화는 끊어졌다. 나는 머리를 감싸쥐고 침대 위에 걸터 앉았다. 조금 전의 사건을 통해서 적어도 한 가지는 배웠다고 생각했다. 어떤 질문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달리 말하자며,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퀴즈도 있다. 그러나 그러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인생의 거의 모든 질문이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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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한 자가 아니라 환경에 잘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찰스다윈"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이나 대기업 엘리베이터 같은 데서 보게 되면 그냥 지나칠 것도 고시원의 쪽방에서 보게 되면 서글퍼진다. 그러니까 달팽이나 쥐며느리가 강해서 살아남은 건 아니라는 뜻이겠지? 이 방의 전 입주자 역시 새로 마주친 환경에서 적응하기 위해 나름 애를 썼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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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운명이라고 믿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운명이란 맞힐 수 밖에 없는 답을 결국 맞히는 것이다. 사랑해야 할 연인들에게는 맞힐 수 밖에 없는 답이 즐비하다. 신화 속에는 깨진 거울이 서로 만나 온전한 거울이 되는 얘기들이 나온다. 오이디푸스는 결국 아버지를 죽이고 주몽은 끝내 고구려의 왕이 된다. 운명은 누구 말마따나 과녁에 명중하도록 쏘아진 화실인 것이다. 그러므로 운명은 백퍼센트 명중할 수 밖에 없는 것. 그러니 이미 만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그들의 만남을 운명이라 믿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다. 단 한 개의 단서도 치명적이며, 단 한 조각의 유류품도 무서운 확신이 된다. 사랑에 빠진 이들은 무능력한 탐정, 서툰 수사관이다. 그들은 법정에서는 채택도 하지 않을 어수룩한 증거 하나만으로도 놀라운 신념에 도달한다. 누구도 그 신념을 철회시킬 수 없다. 결코 흔들리지 않을 신념, 그것은 운명에 대한 확신이다. 이 서툰 탐정의 눈에, 운명적 사랑이라는 사건의 전모는 이미 명백하며 범인의 검거는 식은 죽 먹기다. 화살은 이미 표적이 꽂혀있고 표적으로 걸어가 십점 만점의 정중앙에서 그것을 확인하고 뽑아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화살을 뽑아든 우리의 영웅은 이렇게 외치기만 하면 된다. 이게 운명적 사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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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보빵 할아버지는 내게 알려주었다. 돈 얘기가 나오면 진지해져야 한다는 것을. 수돗물도 정수장에서 집까지 오는 사이에 조금식 새나가고 전기도 발전소에서 집까지 오는 동안 그 잉ㄹ부가 사라진다. 그리고 우리의 진심어린 말도 곧잘 오해를 받는다. 내 입에서 나간 '사랑'은 네가 들은 그 '사랑'이 아니다. 나의 생각은 너에게 전해지지 않고 너의 생각 역시 나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말은 언제나 왜곡되고 변질된다. 그러나 돈에 대한 말은 아무 손실 없이 그대로 전달된다. 시내버스 탑승구에 '요금900원'이라고 씌어 있으면 그냥 구백원인 것이다. 버스요금이 백원이라도 부족하면 운전기사한테 빌어야 한다. "아, 오백원인데 자세히 보니 구백원으로 보이네. 참 모든 사물은 보기 나름이야" 같은 말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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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옆방에 산 지가 벌써 이 주가 다 돼가는데 이야기를 나눠본 것은 처음이었다. 내 침대 바로 지척에서 꽤나 끙끙대며 뒹굴었을 텐데도 나는 전혀 모른 채 자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게 전형적인 도시의 삶일 터이다. 도시에서는 고통도 뱃살처럼 감추고 관리해야 한다. 고통을 드러내는 것은 뱃살을 내놓고 다니는 것처럼 부끄러운 일이다.
고시원에 사는 여자들은 유난히 고구마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주인 말로는 다이어트 때문이라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좁은 공동부엌에서 낯선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기가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값도 싸고 영양가도 있는 고구마나 바나나, 맥반석 달걀같은 걸 사서 혼자 조용히 먹는 것일 테지. 러닝셔츠나 트레이닝복을 입은 아저씨들은 아무 죄의식 없이 남의 밑반찬이나 우유같은 것을 훔쳐먹고 어린 여자애들에게 시답잖은 농을 걸었다. 건조대에 널어놓은 속옷이 없어지고 샤워장의 온수는 예고 없이 끊겼다. 차례를 기다리던 누군가가 보일러의 스위치를 끄고 달아나는 것이 분명했다. 이 좁은 건물 안에서, 여왕개이 없는 개미굴에서, 서로를 야금야금 파먹으며 우리는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1.5평짜리 방에 웅크리고 앉아 가슴을 두드려가며 꾸역꾸역 고구마를 먹고 있을 고시원의 어린 여자들을 생각했다. 이곳은 그들에게 정거장 같은 곳이다. 정거장에서 친구를 사귀는 사람은 없다. 언젠가 우리는 이곳을 떠날테고 완전히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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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렇게 갑자기, 어느 고시원 옥상에서 삼겹살을 먹다가 생겨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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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대체로 인간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그 다음에 편지를 보내 사랑을 고백한 후, 그 열정이 받아들여지면 만나서 연애를 했다. 최여사만 해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편지질을 하는 동네 남자애들 때문에 아주 골치를 썩었고, 결국은 외할아버지와도 그런 식으로 결혼을 하게 됐다고, 자랑인지 푸념인지를 늘어놓곤 했다. 그러나 요즘의 어떤 인간은 먼저 사랑에 빠진 후에야 그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고 그 연애를 진전시키기 위해 나처럼 이렇게 육신을 움직여 '만남의 광장'으로 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남녀 사이에만 그런 식의 만남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수와 배우, 정치인과도 그런 식으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가? 먼저 사랑하고 나중에 확인하는, 선사랑 후확인. 우리는 흠모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고 밤을 새워 읽은 작품을 쓴 작가의 사인회에 가서 잘 알아보기도 어려운 글자 몇 자를 얻어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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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어두워지고있었다. 도시의 어둠은 산야의 어둠과 달랐다. 어쩔 수 없이 어둠에 자리를 내주고 퇴각한다는 식이 아니라 어둠이 빛 사이로 몰려오는 것 같다. 그러니까 시골에서처럼 어둠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세상을 덮는 게 아니라 발목을 적시면서 무릎부터 차올라 어느새 세상이 그 어둠속에 잠겨드
는 것이다. 어쨌든 놀이터는 어두워졌고 바람도 좀더 차가워졌다.
160
저는 얼마 전까지 태어난 곳에서 쭈욱 살아왔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하루하루가 무한히 반복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구요. 다시 반복되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퀴즈방에서 처음 지원씨를 만났을 때 정말 좋았거든요. 그런데 그 느낌, 그 감정은 다시 되살아날 수 없는 거잖앙. 벌써 지나가버린거죠. 오늘도 이대로 지나가버리면 영원히 다시 경험할 수 없을 거예요
163
나가자.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지갑을 꺼냈다. 내가 낼게
가난한 사람은 이렇게 해서 좀더 가난해진다. 그들은 가난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결국 더 가난해진다. 가난을 숨기기 위해 '남들 다 하는 것'을하고 그 '남들 다 하는 것'때문에 빚을 지고 그 빚을 갚느라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다.
174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나면 다른 이들의 영화평이나 감상을 찾아보고 응원하는 축구팀이 이긴 경기는 다음날의 신문기사를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연애는 영화나 축구와 달랐다. 함께 기쁨을 나눌 상대가 없었고, 설령 있다 해도 그게 가능한 일일 지 의문이었다. 아마 마지못해 참고 들어주는 정도일 것이다. 새로 시작한 내 연애 이야기를 토로할 게시판도 없었고 그것을 환영해줄 동호회도 없었다. 왜 새로 나온 디지털카메라나 뻔하디뻔한 TV드라마를 가지고는 밤새 떠들면서 한 인간의 삶에 이토록 큰 기쁨을 준느 연애에 대해서는 모두가 침묵하고 잇는 것일까? 이 거대한 도시의 어둠에 깃든 한밤중의 침묵이 문득 의아하게 느껴졌다. 이래서 결국 연인들이 커플 미니홈피 같은 것을 만드는 걸까? 거기에 비밀글, 비밀사진을 올리고 아무도 기뻐해주지 않는 둘만의 승리를 즐기는 것일까?
181
Fata regunt orbem! Certa stant omnia lege" 불확실한 것은 운명이 지배하는 영역. 확실한 것은 무릇 인간의 재주가 관할하는 영역. 일은 사람이 하고 이루기는 하늘이 한다.
184
휴대폰은 매일같이 새 모델이 쏟아져나오고 커뮤니케이션 기기와 그 속도는 눈부시게 발전하는데 왜 마음속 깊은 방으로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은 이렇게 늘 어려운 것일까? 왜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상대방에게 자신을 열어 보이는 일으 여전히 힘들걸까?
226
빚을 진다는 건 가난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물론 가난해지면 빚을 질 가능성도 커지지만 빚을 지고도 부유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다 가난한 것은 아니다. 사업가들 중에는 엄청난 빚을 지고도 부유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가난하기만 할 때는 뭐랄까,삶의 여유같은 것도 있었다. 부자들은 시간당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엄청나기 때문에 쉬고 싶어도 그 시간에벌 수 있는 돈 생각을 하면 쉴 수가 없고, 그래서 결국 워커홀릭이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어차피 생산성이 거의 없는 무가치한 시간이고, 그러니 조금 허비하다고 해도 아깝지가 않은 것이다.
마르셀 에메의 소설을 보면 날짜를 쿠폰으로 거래하는 나라의 이야기가나온다.
237
운이야말로 문제적입니다. 운이 끼어들어야 비로소 그 모든 것에서 죽음의 냄새가 풍기게 됩니다. 사람들은 공정하고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척하지요? 그러나 아닙니다. 축구를 보세요. 승부차기 같은 것은 완전히 운 아닙니까? 골키퍼는 앞에 서있는 키커가 아니라 운과 한판승부를 벌이는 겁니다. 심판 운, 대진 우, 모든게 운이죠. 사람들은 왜 사격이나 투포환보다 축구를 좋아하겠습니까? 져도 승복하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 이번에는 운이 나빴어. 이렇게 푸념을 하겠지요. 이기면? 운명의 신이 자기 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실력이 좋아서 이겼다는 얘기보다 하늘이 자기 편이었다는게 훨씬 근사하지 않습니까?
247
지원의 경우는 한 사람이 여러 개의 비슷한 가면을 바꿔 쓰는 것 같았다. 성격은 여일한데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이 늘 조금씩 달랐다.
251
인간은 맡은 일은 일단 해놓고 보려는 경향이 있잖아? 심지어 자살을 하려던 사람도 초인종이 울리면 나가서 우편물을 받는다던데. 아 그래 20세기 초에 말이야. 독일에 한 사업가가 있었는데 아마추어 수학자이기도 했어. 하여튼 이 사람 자살을 하려고 자기 서재로 갔어. 자정이 되면 실행해야지 결심을 하고 자정이 되기를 기다렸대. 초조하기도하고 그래서 서재에 있는 책 한권을 무심코 뽑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 책에 페르마의 마지막정리에 대한 얘기가 있었나봐. 이 간단한게 몇백년간 풀리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해서 그걸 풀다보니 어느새 새벽이었던거야. 죽기로 결심한 자정은 벌써 지나가버린거지. 아 이 정리가 내 생명을 구했구나 싶어 이 사업가는 거액의 상금을 내걸어.
255
어렸을 때의 나는 누가 나에 대해서 물으면 정말 궁금해서 묻는 줄 알고 온 힘을 다해서 대답을 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그저 떠오르는 대로 지껄이는 거였다. 적당한 대꾸만 해주면 그들은 즉시 다른 질문으로 넘어간다. 뻔한 질문만 입력된 사이보그와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그런 사이보그들은 젊고 만만한 사람들을 만나면 단 몇개의 질문으로 버틴다. 취직. 결혼 등. 그런 사이보그들이 원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그냥 그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정말 내가 뭘 원하는지 궁금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259
왜 아름다운 것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무심할 때 더 아름다워 보이는 걸까? 나는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쓰다듬어보고 싶었다.
269
나이 들어 주변을 돌아보니까 계산 빠르고 실속 잘 챙기던 인간들은 다 별볼일 없는 놈들이 돼 있고 철없는 몽상가들이 큰 인물이돼 있더라는 거야. 머리 좋은 사람들은 남의 밑에서 굽실거리거나 감옥에 갔고, 대신 꿈이 컸던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더래
300
나는 영안실 입구의 전광판에서 그녀의 이름을 확인했다. 호텔처럼 죽은자에게도 각자의 방이 있었다. 이 세계는 혹시 무수한 방으로 이루어진 게 아닐까? 신생아실에서 태어나 교실에서 배우고 소주방에서 술 먹다가 노래방에서 노래하고 찜질방에서 목욕하고 채팅방에서 채팅하다 고시원의 쪽방에서 잠드는, 그리고 끝내는 대형 병원의 영안실에서 마감하는 삶.
395
퀴즈는 리비도의 힘으로 하는거야. 왜 젊은 수학자가 난해한 정리를 증명한다고 생각해? 늙고 경험이 많으면 더 유리할 텐데? 젊은 수컷들이 자칫하면 평생이 걸릴지도 모르는, 아니 어쩌면 영원히 안 풀릴지 모를, 하지만 풀기만 하면 세계적이 스타가 될 수도 있는 정리에 매달려 자기의 모든 것을 무모하게 쏟아붓는 행위에 그것 말고 무슨 다른 유인이 있다고 생각해? 몸속의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그 미친짓을 시키는거야. 그래서 신중하고 사려깊고 모험을 싫어하는 늙은이라면 지레 겁을 먹고 도전하지 않을 엄청난 일에 스스로를 던져넣는 거지.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엉뚱한 분야를 서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대수학이 전공인 사람이 기하학이나 위상수학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수도 있는거야.
천재란게 뭘까?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것들을 과감하게 연결시킬 수 잇는 재능 아닐까? 하지만 그건 아주 무모한 일이지. 그런 무모한 이을 해내려면 리비도가 부글부글 끓어올라야돼. 많은 수학자들이 결혼을 하고 안정을 찾으면 더이상 증명같은 무모하고 힘든 일을 하진 않잖아? 그건 시인도 마차가지야. 시도 젊은 시인들, 특히 리비도가 충만한 어리 수컷들의 시가 그래서 좋은 거야. 흐흐. 랭보의 '굶주림'이라는 시 알아? 더이상 내일은 없으니 사틴결의 잉걸불이여 당신의 열기는 의무이다. 어때? 벌써 뜨끈뜨끈하잖아?
46
나처럼 눈이 멀면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 사마실 수 없다네
왜요?
자네도 요즘 젊은이 같구만. 생각도 하기 전에 질문부터 하고 있잖아
그게 어때서요?
우선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하거든. 그리고 틀리더라도 일단 자기 답을 준비해둬야 하는 거야
왜요?
그는 오른 손으로 머리를 긁었다.
세상이 그런 젊은이를 좋아하니까. 세상은 질문하는 젊은이를 좋아하지 않아. 자기 대답을 갖고 있는 젊은이를 원하지
질문을 잘하는게 중요하다고 배었는데요
그럼 그렇게 생각하고 살게
하여간 모르겠어요 왜 커피를 못 사드시는데요?
주인들이 구걸하러 온 줄 알고 천원짜리를 쥐여주거나 아니면 그냥 내쫓아버리거든. 햇볕 따땃하게 드는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하는게 사는 낙인데 말야.
54
조선시대에 유만주란 양반이 있었는데 이런 글을 남기셨지. 들어보게. '저택에 사치를 부리면 귀신이 엿보고, 먹고 마시는데 사치를 부리면 신체에 해를 끼치며, 그릇이나 의복에 사치를 부리면 고아한 품위를 망가뜨린다.
그럼 돈은 벌어서 어디다 써요?
끝까지 들어보게. 뒤가 근사해. '오로지 문방도구에 사치를 부리는 것만은 호사를 부리면 부릴수록 고아하다. 귀신도 너그러이 눈감아줄 일이요, 신체도 편안하고 깨끗하다.' 이런 말씀이야.
56
090611 아리스토텔레스 좋은것은 세가지 유익, 감동, 재미/사상과윤리 첫시간
"이야, 순 오래된 책들이네."
꼭 그렇지는 않았다. 개중에는 내가 용돈을 아껴 산 책들도 많았다. 대학교 교재들이야 하나도 아깝지 않았지만 한때나마 내게 감동을 줬던 소설들은 정말 아까웠다. 그리스 수사학자들은 이렇게 가르쳤다고 한다. 연설을 할 때는 감동을 주든가 아니면 지식을 줘라. 그것도 안되면 즐겁게라도 해줘라. 나는 그 책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거나 새로운 것을 배웠고 때론 유쾌하게 웃으며 방바닥을 굴렀다. 그런 책들이 이제 내 곁을 떠나가고 있었다.
64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나는 어느새 그런 울적한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었다. 인간은 왜 사는 걸까? 산다는 것에 뭔가 의미는 있는 걸까? 자벌레처럼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 기어가다가 알을 까고는 죽어버리는 걸까? 질문을 던지면 던질수록 인생은 더 오리무중이 되어 저 멀리 달아났다.
나는 많은 시간을 누워서 보냈다. 고시원에서는 누워 있는 게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가만히 누워서 마포도서관에서 빌려온 소설을 읽거나 잠을 잤다. 그것도 지겨워지면 책상에 앉아 내게 남은 유일한 창을 열었다. 그것은 물론 빌 게잋의 창이었다. 그 창으로 알바 자리도 찾고 이런 저런 것들을 알아볼 생각이었지만 어느새 나는 즐겨찾기에서 퀴즈방 페이지를 누르고 있었다. 아, 이래서는 안 되지. 나는 '퀴즈방'이 있는 채팅사이트를 즐겨찾기 메뉴에서 지웠다. 그리고 뭔가 진지한 일을 해볼 생각이었지만 어느새 각종 연예계 정보를 훑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터넷은 미로와도 같다. 처음에는 어떤 목적이 있어서 들어오지만 포털의 뉴스에 한번 낚이면 그 목적도 잊어버리고 허접스러운 뉴스의 미로를 헤매게 된다.
나는 익스플로러의 옵션에서 홈페이지를 '빈 페이지'로 설정했다. 그리고 컴퓨터 옆에 수첩을 갖다놓고 인터넷 사용일지를 적기로 했다. 그래야 인터넷에 접속한 애초의 목적을 잊지 않을 것 같았다. 말하자면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같은 것이었다.
67
군대에서 제대하고 사회로 돌아왔을 때, 가장 피곤했던 것은 선택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군대는 식단이 하나였다.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있으면 차례대로 밥과 반찬을 준다. 하루의 일과는 내가 정하는게 아니라 육군본부와 사단 같은, 나로서는 감도 오지 않는 높은 곳에서 정한다. 아무것도 선택할 필요가 없다. 군대에서는 아무도 "이일병, 너라면 이 두 가지 일 중에서 뭘 할래? 골라봐" 같은 얘기도 "이일병, 너라면 이 두 가지 일 중에서 뭘 할래? 골라봐" 같은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냥 정해진 일을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회로 돌아오자 세상은 선택할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딜 좀 가려고 해도 먼저 버스냐 지하철이냐를 결정해야 했다. 베스킨라빈스든 스타벅스든 계산대 앞에서는 늘 뭔가를 골라야 한다. 부라보콘이냐 월드콘이냐만 결정하면 됐던 시절은 가버린 것이다. 마술사들은 앞에 있는 관객에게 카드를 고르게 함으로써 속임수를 감춘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는 쉽게 믿어버리고 심지어 책임까지 지려고 하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인간은 늘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속는 것이다.
68
레스토랑에는 원래 좋은 자리라는 게 많지가 않아. 좋은 게 흔할 리 없잖아?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손님들이 자리에 불만을 갖고 있는 셈이지. 그런데 손님들이 자리를 고르면 말이야, 결국 그 자리에 앉자고 주장한 사람이 그 원망을 뒤집어쓰게 되는 거야. 그러나 레스토랑측에서 정해서 앉혀주면 적어도 자기들끼리 자리 가지고 원망하지는 않아. 원망을 하더라도 레스토랑 쪽을 비난하겠지. 그리고 말이야, 의외로 선택을 내리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더라구. 차라리 누가 대신 정해줬으면 하고 바란단 말이야. 그러니까, 들어오는 손님보고 아무데나 편한 데 앉으라고 하는 건 친절이 아니라 불친절인 거야. 그런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옷을 멋지게 차려입은 권위있는 지배인이 자리를 정해서 앉혀주는 거야. 권위적인 명령도 때로는 친절인 거지.
70
(빛나가 모텔에서 전화했는데 나오라고 대답한 상황)
전화는 끊어졌다. 나는 머리를 감싸쥐고 침대 위에 걸터 앉았다. 조금 전의 사건을 통해서 적어도 한 가지는 배웠다고 생각했다. 어떤 질문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달리 말하자며,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퀴즈도 있다. 그러나 그러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인생의 거의 모든 질문이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1
"가장 강한 자가 아니라 환경에 잘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찰스다윈"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이나 대기업 엘리베이터 같은 데서 보게 되면 그냥 지나칠 것도 고시원의 쪽방에서 보게 되면 서글퍼진다. 그러니까 달팽이나 쥐며느리가 강해서 살아남은 건 아니라는 뜻이겠지? 이 방의 전 입주자 역시 새로 마주친 환경에서 적응하기 위해 나름 애를 썼던 모양이다.
82
사랑이 운명이라고 믿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운명이란 맞힐 수 밖에 없는 답을 결국 맞히는 것이다. 사랑해야 할 연인들에게는 맞힐 수 밖에 없는 답이 즐비하다. 신화 속에는 깨진 거울이 서로 만나 온전한 거울이 되는 얘기들이 나온다. 오이디푸스는 결국 아버지를 죽이고 주몽은 끝내 고구려의 왕이 된다. 운명은 누구 말마따나 과녁에 명중하도록 쏘아진 화실인 것이다. 그러므로 운명은 백퍼센트 명중할 수 밖에 없는 것. 그러니 이미 만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그들의 만남을 운명이라 믿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다. 단 한 개의 단서도 치명적이며, 단 한 조각의 유류품도 무서운 확신이 된다. 사랑에 빠진 이들은 무능력한 탐정, 서툰 수사관이다. 그들은 법정에서는 채택도 하지 않을 어수룩한 증거 하나만으로도 놀라운 신념에 도달한다. 누구도 그 신념을 철회시킬 수 없다. 결코 흔들리지 않을 신념, 그것은 운명에 대한 확신이다. 이 서툰 탐정의 눈에, 운명적 사랑이라는 사건의 전모는 이미 명백하며 범인의 검거는 식은 죽 먹기다. 화살은 이미 표적이 꽂혀있고 표적으로 걸어가 십점 만점의 정중앙에서 그것을 확인하고 뽑아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화살을 뽑아든 우리의 영웅은 이렇게 외치기만 하면 된다. 이게 운명적 사랑이라고.
91
곰보빵 할아버지는 내게 알려주었다. 돈 얘기가 나오면 진지해져야 한다는 것을. 수돗물도 정수장에서 집까지 오는 사이에 조금식 새나가고 전기도 발전소에서 집까지 오는 동안 그 잉ㄹ부가 사라진다. 그리고 우리의 진심어린 말도 곧잘 오해를 받는다. 내 입에서 나간 '사랑'은 네가 들은 그 '사랑'이 아니다. 나의 생각은 너에게 전해지지 않고 너의 생각 역시 나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말은 언제나 왜곡되고 변질된다. 그러나 돈에 대한 말은 아무 손실 없이 그대로 전달된다. 시내버스 탑승구에 '요금900원'이라고 씌어 있으면 그냥 구백원인 것이다. 버스요금이 백원이라도 부족하면 운전기사한테 빌어야 한다. "아, 오백원인데 자세히 보니 구백원으로 보이네. 참 모든 사물은 보기 나름이야" 같은 말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114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옆방에 산 지가 벌써 이 주가 다 돼가는데 이야기를 나눠본 것은 처음이었다. 내 침대 바로 지척에서 꽤나 끙끙대며 뒹굴었을 텐데도 나는 전혀 모른 채 자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게 전형적인 도시의 삶일 터이다. 도시에서는 고통도 뱃살처럼 감추고 관리해야 한다. 고통을 드러내는 것은 뱃살을 내놓고 다니는 것처럼 부끄러운 일이다.
고시원에 사는 여자들은 유난히 고구마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주인 말로는 다이어트 때문이라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좁은 공동부엌에서 낯선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기가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값도 싸고 영양가도 있는 고구마나 바나나, 맥반석 달걀같은 걸 사서 혼자 조용히 먹는 것일 테지. 러닝셔츠나 트레이닝복을 입은 아저씨들은 아무 죄의식 없이 남의 밑반찬이나 우유같은 것을 훔쳐먹고 어린 여자애들에게 시답잖은 농을 걸었다. 건조대에 널어놓은 속옷이 없어지고 샤워장의 온수는 예고 없이 끊겼다. 차례를 기다리던 누군가가 보일러의 스위치를 끄고 달아나는 것이 분명했다. 이 좁은 건물 안에서, 여왕개이 없는 개미굴에서, 서로를 야금야금 파먹으며 우리는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1.5평짜리 방에 웅크리고 앉아 가슴을 두드려가며 꾸역꾸역 고구마를 먹고 있을 고시원의 어린 여자들을 생각했다. 이곳은 그들에게 정거장 같은 곳이다. 정거장에서 친구를 사귀는 사람은 없다. 언젠가 우리는 이곳을 떠날테고 완전히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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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렇게 갑자기, 어느 고시원 옥상에서 삼겹살을 먹다가 생겨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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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대체로 인간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그 다음에 편지를 보내 사랑을 고백한 후, 그 열정이 받아들여지면 만나서 연애를 했다. 최여사만 해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편지질을 하는 동네 남자애들 때문에 아주 골치를 썩었고, 결국은 외할아버지와도 그런 식으로 결혼을 하게 됐다고, 자랑인지 푸념인지를 늘어놓곤 했다. 그러나 요즘의 어떤 인간은 먼저 사랑에 빠진 후에야 그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고 그 연애를 진전시키기 위해 나처럼 이렇게 육신을 움직여 '만남의 광장'으로 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남녀 사이에만 그런 식의 만남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수와 배우, 정치인과도 그런 식으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가? 먼저 사랑하고 나중에 확인하는, 선사랑 후확인. 우리는 흠모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고 밤을 새워 읽은 작품을 쓴 작가의 사인회에 가서 잘 알아보기도 어려운 글자 몇 자를 얻어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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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어두워지고있었다. 도시의 어둠은 산야의 어둠과 달랐다. 어쩔 수 없이 어둠에 자리를 내주고 퇴각한다는 식이 아니라 어둠이 빛 사이로 몰려오는 것 같다. 그러니까 시골에서처럼 어둠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세상을 덮는 게 아니라 발목을 적시면서 무릎부터 차올라 어느새 세상이 그 어둠속에 잠겨드
는 것이다. 어쨌든 놀이터는 어두워졌고 바람도 좀더 차가워졌다.
160
저는 얼마 전까지 태어난 곳에서 쭈욱 살아왔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하루하루가 무한히 반복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구요. 다시 반복되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퀴즈방에서 처음 지원씨를 만났을 때 정말 좋았거든요. 그런데 그 느낌, 그 감정은 다시 되살아날 수 없는 거잖앙. 벌써 지나가버린거죠. 오늘도 이대로 지나가버리면 영원히 다시 경험할 수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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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자.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지갑을 꺼냈다. 내가 낼게
가난한 사람은 이렇게 해서 좀더 가난해진다. 그들은 가난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결국 더 가난해진다. 가난을 숨기기 위해 '남들 다 하는 것'을하고 그 '남들 다 하는 것'때문에 빚을 지고 그 빚을 갚느라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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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나면 다른 이들의 영화평이나 감상을 찾아보고 응원하는 축구팀이 이긴 경기는 다음날의 신문기사를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연애는 영화나 축구와 달랐다. 함께 기쁨을 나눌 상대가 없었고, 설령 있다 해도 그게 가능한 일일 지 의문이었다. 아마 마지못해 참고 들어주는 정도일 것이다. 새로 시작한 내 연애 이야기를 토로할 게시판도 없었고 그것을 환영해줄 동호회도 없었다. 왜 새로 나온 디지털카메라나 뻔하디뻔한 TV드라마를 가지고는 밤새 떠들면서 한 인간의 삶에 이토록 큰 기쁨을 준느 연애에 대해서는 모두가 침묵하고 잇는 것일까? 이 거대한 도시의 어둠에 깃든 한밤중의 침묵이 문득 의아하게 느껴졌다. 이래서 결국 연인들이 커플 미니홈피 같은 것을 만드는 걸까? 거기에 비밀글, 비밀사진을 올리고 아무도 기뻐해주지 않는 둘만의 승리를 즐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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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a regunt orbem! Certa stant omnia lege" 불확실한 것은 운명이 지배하는 영역. 확실한 것은 무릇 인간의 재주가 관할하는 영역. 일은 사람이 하고 이루기는 하늘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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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은 매일같이 새 모델이 쏟아져나오고 커뮤니케이션 기기와 그 속도는 눈부시게 발전하는데 왜 마음속 깊은 방으로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은 이렇게 늘 어려운 것일까? 왜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상대방에게 자신을 열어 보이는 일으 여전히 힘들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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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진다는 건 가난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물론 가난해지면 빚을 질 가능성도 커지지만 빚을 지고도 부유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다 가난한 것은 아니다. 사업가들 중에는 엄청난 빚을 지고도 부유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가난하기만 할 때는 뭐랄까,삶의 여유같은 것도 있었다. 부자들은 시간당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엄청나기 때문에 쉬고 싶어도 그 시간에벌 수 있는 돈 생각을 하면 쉴 수가 없고, 그래서 결국 워커홀릭이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어차피 생산성이 거의 없는 무가치한 시간이고, 그러니 조금 허비하다고 해도 아깝지가 않은 것이다.
마르셀 에메의 소설을 보면 날짜를 쿠폰으로 거래하는 나라의 이야기가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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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야말로 문제적입니다. 운이 끼어들어야 비로소 그 모든 것에서 죽음의 냄새가 풍기게 됩니다. 사람들은 공정하고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척하지요? 그러나 아닙니다. 축구를 보세요. 승부차기 같은 것은 완전히 운 아닙니까? 골키퍼는 앞에 서있는 키커가 아니라 운과 한판승부를 벌이는 겁니다. 심판 운, 대진 우, 모든게 운이죠. 사람들은 왜 사격이나 투포환보다 축구를 좋아하겠습니까? 져도 승복하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 이번에는 운이 나빴어. 이렇게 푸념을 하겠지요. 이기면? 운명의 신이 자기 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실력이 좋아서 이겼다는 얘기보다 하늘이 자기 편이었다는게 훨씬 근사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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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의 경우는 한 사람이 여러 개의 비슷한 가면을 바꿔 쓰는 것 같았다. 성격은 여일한데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이 늘 조금씩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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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맡은 일은 일단 해놓고 보려는 경향이 있잖아? 심지어 자살을 하려던 사람도 초인종이 울리면 나가서 우편물을 받는다던데. 아 그래 20세기 초에 말이야. 독일에 한 사업가가 있었는데 아마추어 수학자이기도 했어. 하여튼 이 사람 자살을 하려고 자기 서재로 갔어. 자정이 되면 실행해야지 결심을 하고 자정이 되기를 기다렸대. 초조하기도하고 그래서 서재에 있는 책 한권을 무심코 뽑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 책에 페르마의 마지막정리에 대한 얘기가 있었나봐. 이 간단한게 몇백년간 풀리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해서 그걸 풀다보니 어느새 새벽이었던거야. 죽기로 결심한 자정은 벌써 지나가버린거지. 아 이 정리가 내 생명을 구했구나 싶어 이 사업가는 거액의 상금을 내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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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의 나는 누가 나에 대해서 물으면 정말 궁금해서 묻는 줄 알고 온 힘을 다해서 대답을 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그저 떠오르는 대로 지껄이는 거였다. 적당한 대꾸만 해주면 그들은 즉시 다른 질문으로 넘어간다. 뻔한 질문만 입력된 사이보그와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그런 사이보그들은 젊고 만만한 사람들을 만나면 단 몇개의 질문으로 버틴다. 취직. 결혼 등. 그런 사이보그들이 원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그냥 그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정말 내가 뭘 원하는지 궁금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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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름다운 것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무심할 때 더 아름다워 보이는 걸까? 나는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쓰다듬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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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주변을 돌아보니까 계산 빠르고 실속 잘 챙기던 인간들은 다 별볼일 없는 놈들이 돼 있고 철없는 몽상가들이 큰 인물이돼 있더라는 거야. 머리 좋은 사람들은 남의 밑에서 굽실거리거나 감옥에 갔고, 대신 꿈이 컸던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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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안실 입구의 전광판에서 그녀의 이름을 확인했다. 호텔처럼 죽은자에게도 각자의 방이 있었다. 이 세계는 혹시 무수한 방으로 이루어진 게 아닐까? 신생아실에서 태어나 교실에서 배우고 소주방에서 술 먹다가 노래방에서 노래하고 찜질방에서 목욕하고 채팅방에서 채팅하다 고시원의 쪽방에서 잠드는, 그리고 끝내는 대형 병원의 영안실에서 마감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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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는 리비도의 힘으로 하는거야. 왜 젊은 수학자가 난해한 정리를 증명한다고 생각해? 늙고 경험이 많으면 더 유리할 텐데? 젊은 수컷들이 자칫하면 평생이 걸릴지도 모르는, 아니 어쩌면 영원히 안 풀릴지 모를, 하지만 풀기만 하면 세계적이 스타가 될 수도 있는 정리에 매달려 자기의 모든 것을 무모하게 쏟아붓는 행위에 그것 말고 무슨 다른 유인이 있다고 생각해? 몸속의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그 미친짓을 시키는거야. 그래서 신중하고 사려깊고 모험을 싫어하는 늙은이라면 지레 겁을 먹고 도전하지 않을 엄청난 일에 스스로를 던져넣는 거지.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엉뚱한 분야를 서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대수학이 전공인 사람이 기하학이나 위상수학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수도 있는거야.
천재란게 뭘까?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것들을 과감하게 연결시킬 수 잇는 재능 아닐까? 하지만 그건 아주 무모한 일이지. 그런 무모한 이을 해내려면 리비도가 부글부글 끓어올라야돼. 많은 수학자들이 결혼을 하고 안정을 찾으면 더이상 증명같은 무모하고 힘든 일을 하진 않잖아? 그건 시인도 마차가지야. 시도 젊은 시인들, 특히 리비도가 충만한 어리 수컷들의 시가 그래서 좋은 거야. 흐흐. 랭보의 '굶주림'이라는 시 알아? 더이상 내일은 없으니 사틴결의 잉걸불이여 당신의 열기는 의무이다. 어때? 벌써 뜨끈뜨끈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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