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8일 수요일

김민하_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20세기의 혁명가 레닌의 젊은 시절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레닌의 아버지는 차르로 상징되는 러시아 전제정권으 열렬한 지지자였기에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교육관료로써 꾸준히 출세했다. 그런 가정환경을 고려하면, 어린 레닌이 오늘날로 치면 '레고'(나는 가난해서 레고를 살 수 없었다.)와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자기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는 장면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동시에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어떤 악마적 불행이 그를 그토록 잔혹한 혁명가로 만들어 버렸던 것일까?'하는 의문이 맴돌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가장 합리적인 방식은 레닌의 형이 테러리스트였다는 점을 들먹이는 것이다. 형이 황제를 암살하려다 실패해서 사형을 당하는 바람에 레닌이 자신의 혁명적 본능을 깨단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의 형이 그런 비극을 당하는 바람에 혁명과 거리가 멀어진 인물도 있지 않겠는가? '형처럼 하다가는 죽는 수가 있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따라서 이런 설명은 다시 '레닌이 도대체 왜 형의 실패를 되풀이하려고 마음먹었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을수밖에 없도록 한다. 그리고 또 이러한 질문에도 여러가지 추측이 가능할 것이고, 그것은 아마 끝이 없을 것이다.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레닌이 어떻게 계급의식을 획득하게 되었는지가 좀 더 중요하게 여겨진 사회가 있었다. 바로 현실사회주의 체제였던 소비에트 공화국 연방의 사회였다.

'무오류의 레닌'으로부터 많은 권위를 빌려 왔던 스탈린주의자들은 레닌의 계급의식이 도대체 언제 각성된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 그들이 몇 년에 걸쳐 고민하고 내놓은 답은 '태어날 때부터 였다.' 레닌은 태어날 때부터 대머리 혁명가였고, 형인 알렉산더가 차르 암살에 실패해서 사형을 당할 때에도 나로드니키 테러리스트 (테러를 통해 왕이나 귀족들을 살해함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러시아의 민중주의자들) 들의 전술적 오류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현실사회주의는 누가 보아도 '뻥'인 이런 식의 거짓말을 수만 개나 만들어 냈다. 인간으로서의 존재 근거를 빼앗기고 '무오류의 신'이 된 레닌은, 박제가 되어 그가 생전에 '부셔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 수많은 부르주아적 건축물들과 똑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커다란 묘에 누워서 몇 녀에 한 번씩 옷을 갈아입는 신세가 되었다. 러시아의 현실사회주의는 무너졌지만 그는 여전히 그곳에 그대로 누워 있다.

이 땅에서 '혁명가'(운동가, 직업활동가, 진보적 직업 정치인 등 무엇이든 좋다.)로 산다는 것은 매우 특이한 괴짜로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사회불안을 야기하는 이상한 폭도들'이고, 자신들을 반겨 주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삶을 내팽개치고 남을 위하는 이상한 영웅들'이다.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그들이 그런 괴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미에서든 저런 의미에서든 '괴짜'로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 텔레비젼에 범람하는 '웃음코드'에 대해 생각해 보라. 방구석에서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열중하는 '오타쿠'들을 떠올려 보라. 인터넷에 넘쳐 나는 수많은 '패러디'와 그것을 생산하는 'dcinside.com'을 보라.

보통 대단한 운동가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텔레비젼도 보지 않고 날마다 진지한 책을 읽으며 밤을 지새웠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아는 이론가 중에는 <웃찾사>의 농담을 알지 못하면 같이 대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도 있고, 계절별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느 횟감의 이름과 특징을 줄줄이 꿰는 사람도 있다. 로봇 애니메이션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꼬, 비틀스의 연도별 발매 음반을 전부 암기하느 사람도 있다. 즉, '혁명가'도 그 수많은 '괴짜'들의 일원일 뿐이다.

괴짜들의 일원이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고, '혁명가'가 되는 것도 어떤 대단한 증표를 얻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각성할 기회는 생활 곳곳에 널려 있다. 집 밖으로 한발만 내딛으면 곧바로 정치의 영역이 펼쳐지는 것이다.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어 많은 사람들이 짜증을 내고 있을 때, 40만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었던 기타가 갑자기 100만원을 호가할때, 일본에서 제작된 컴퓨터 게임을 더 이상 불법복제판이 아닌 정식 라이선스 판으로 구입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이 책은 바로 그런 수많은 '정치적 순간'들이 어떻게 평범한 사람을 레닌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p51
학교 인터넷 게시판이 아니라면 자판기에서 중국산 탈지분유(몸에 안좋지만 맛있는) 먹고싶은 학생이 이를 건의할 방법은?

보통 모든 일에는 절차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자판기에 우유를 추가하는 것'에 대한 절차는 무엇인가?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다룰 문제인가? 그렇다면 자판기 메뉴에 무언가를 추가하고 싶다면 '엄마'한테 이야기 해야한단 말인가?

관료들이 절차적으로 애매한 문제를 처리하는 가장 편리한 방식은 '여론'을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라는 기구에는 따로 여론조사를 하지 않는 이상 '학생들의 여론'을 확인할 길이 없다. 사실 국가 기관 차원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p58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진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끊임 없이 냉소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냉소가 양지로 끌려 나왔을 때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눈부신 햇살 아래에서도 냉소가 살아남으려면 무엇가 웃기는 존재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희화화는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느 셈이다.

'길'이라고 불리던 한 친구는 '앞머리는 눈썹 위까지만 길러야 한다'는 규정을 무력화하기 위해 눈썹을 밀어버리고 학교에 나와 전설로 남았다. 그렇지만 이후 학교를 비난하는 신문을 자신만 들여다보던 공책에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자 금세 잊히더니, 급기야 나중에는 평범한 모범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만약 그 친구가 좀 더 웃긴 방식으로 혁명을 일으켰다면 그렇게 쉽게 잊혔을까?




p68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수많은 것들에도 거의 다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효도를 해야 한다는 사상은 자식들이 효도를 하지 않으면 사회가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에서 누군가 고안해 낸 것일수도 있고, 자식을 낳은 부모들이 노후를 보장받고 싶어서 만들어낸 담론일 수 있고, 정신분석학적인 고려의 대상일 수도 있고, 그냥 인간 본능일 수도 있다. 어찌됐든 중요한 것은 이유가 없는 것에도 나름 이유가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p147
사실 생활인들의 입장에서는 운동권 활동가들이 도대체 벌이도 되지 않는 일에 왜 그렇게 헌신적으로 매달리는지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이해가 안되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면 당연히 '아 저 사람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운동권 활동가라고 해서 어떻게 생활하는 데 고충이 없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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